▲ 왼쪽부터 이건희, 정몽구, 정몽헌 | ||
현재 재계 10대 그룹의 회장 중에 절반이 넘는 6명이 해외에 머물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달 8일 일본으로 떠났으며,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9월부터 각각 출장길에 올라 현재까지 외국에 머물고 있다.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유상부 포스코 회장,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의 게이단렌이 매년 개최하는 한일재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란히 일본 도쿄로 떠났다.
이쯤되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회장님’들의 모습을 자주 대할 지경이다. 각 그룹 총수들의 해외 출장이 하반기 들어 유난히 잦아지자,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나돌고 있는 얘기는 12월19일에 치르는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재계 총수들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기 위해 잇따라 해외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실제로 이런 추측들은 정몽구 회장이 최대 명절인 추석에도 집을 떠나 해외에 머물렀다는 것이나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 제사도 불참한 채 일본으로 황급히 떠난 부분에서 엿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런 이유가 얼마나 작용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재벌그룹 회장들이 인천공항을 빠져 나갈 때에는 ‘나름대로’ 이유들이 많다.
이건희 회장이 해외출장을 떠나는 이유는 ‘사업구상을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이 회장은 올해가 밝자마자, 지난 1월 중순 ‘한 해’ 사업구상을 위해 미국, 일본 등으로 떠났다가 3월 말이 돼서야 귀국했다. 또 지난 7월에는 ‘하반기’ 사업구상차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가 8월 말 서울로 돌아왔다. 지난달 8일 이 회장이 또다시 일본땅을 밟은 이유 역시 ‘내년도’ 사업구상을 위해서.
삼성그룹은 “내년도 경영계획과 인사구상 등을 위해 출국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사업구상 명목으로 해외출장길에 올랐다가 돌아올 때마다 굵직한 가이드라인들을 제시했다. ‘준비 경영’, ‘중국추격 대처방안 마련’ 등이 이 회장이 출장에서 돌아온 뒤 풀어놓은 이야기들.
▲ 왼쪽부터 김승연, 유상부, 박용오 | ||
정몽구 회장은 올해를 통틀어 재계 총수 중 항공 탑승횟수에 따른 마일리지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 총수 중 한 명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세간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람에 속앓이가 심했다고 한다.
물론 정치권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정 회장의 외유가 잦았던 첫 번째 이유는 민간외교활동을 위해서였다.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서인 것. 정 회장은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매달 해외로 떠났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에, 5월에서 7월에는 일본 및 유럽 각지를 두루 살폈으며, 잠시 귀국해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난 후 지난 9월에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는 것.
이후 정 회장은 귀국을 미룬 채 현재까지 세계 각지 회원국들의 표몰이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해외출장도 대부분은 민간 외교활동을 위해서라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해외체류 날수를 기준으로 할 때 올해 6개월 이상을 외국에 기거했다는 것.
김 회장은 지난 1월 말 현지 법인 시찰차 출장 길에 오른 이래 지난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민간 외교활동을 위해 미국에 머물렀다. 또 7월부터는 경제통상대사 자격으로, 또 지난 9월에는 정몽구 회장과 함께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직을 맡음에 따라 ‘외교활동을 위해’ 여러 번 출장길에 올랐다. 현재 김 회장은 전경련 주최 한일재계회의에 참석키 위해 지난주에 출국한 상황이다.
반면 재계에서 비교적 젊은 총수로 꼽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주)SK 회장 등은 그룹 현지 법인 시찰을 위해 자주 출국했다. 구 회장은 지난 5월에 중국현지에 설립된 LG공장들을 둘러보기 위해 사무실을 비웠다. 또 지난 9월에는 현지법인시찰 및 수출증진방안 모색을 이유로 미국에 머물기도 했다.
최태원 (주)SK 회장 역시 지난 1월 뉴욕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키 위해 첫 출국한 이후, 인도네시아 사업시찰, 한-중IT관련 포럼 등에 참석키 위해 해외에 머물렀다. 이 두 회장의 특징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 길어봐야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