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과 북, 오랜 침묵 깨고 드디어 테이블에 마주하다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에서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대표단이 회담 장소인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관계 해빙의 전조는 올 새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비롯된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처음 남북관계 개선과 평창올림픽 참가를 시사했다. 직후 우리 정부는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미국의 협의 하에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무려 26년 만에 한미합동훈련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는 북측 당국의 마음을 흔들었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회담을 받아들였다.
1월 3일 판문점 채널이 복구됐으며, 드디어 1월 9일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남측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나섰으며, 북측은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위시로 한 대표단을 내보냈다. 양측은 오전 대표단장 회담, 오후 실무진 회담을 거쳐 23개월 만에 남북 간 동해 군 통신선을 복구하는 한편,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체육 분야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1월 9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 회담은 오랜 기간 냉각기를 유지해 온 양측 관계에 다시금 다리를 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회담 이후 양측은 몇 차례 실무회담을 통해 남북 간 예술단 공연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의 단초를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북측의 유명인사인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남한을 방문해 KTX에 승선하기도 했다.
#2.평양의 공주가 서울에 왔다!
김여정 북한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2018.2.11 연합뉴스
수 차례의 실무회담을 통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결정됐다. 그리고 2월 9일 올림픽 개막식 참석 대표단에 뜻밖의 인물이 포함됐다. 바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여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었다. 김 부부장은 2월 9일, 김영남, 리선권, 최휘 등 대표단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여정 부부장의 남한 방문은 그야말로 남한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는 김씨 일가 인사 중 분단 이후 첫 남한 방문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백두혈통 인사 중 첫 남한행’임을 강조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도 불이 붙었다.
김 부부장은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접견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직접 전달했다. 이와 함께 그는 문 대통령에게 방북을 요청해 일부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김 부부장은 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와 이벤트마다 오빠의 지근거리에서 의전과 수행비서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3. 남과 북이 ‘하나’가 된 평창올림픽
20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하키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의 경기를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뒤 한반도기를 흔드는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단일팀은 끝까지 선전을 펼쳤지만 스웨덴에 1-6으로 패했다. 2018.2.20 연합뉴스
2월 남측에서 개최된 평창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다. 북한 선수단은 선수 22명, 임원 24명 등 총 46명으로 구성됐다. 참가 종목은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한 피겨(페어 종목)를 비롯해 쇼트트랙,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아이스하기 등 총 5개 종목이었다.
이 중에서도 단연 명장면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었다. 남북 합의에 따라 ‘코리아’로 명명된 단일팀은 그 구성 이전부터 남측 선수들의 엔트리 피해가 예상됨에 따라 숱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코리아’로 뭉친 단일팀은 스웨덴, 스위스, 일본 등 조별예선에서 강호와 맞붙으며 랜디 희수 그리핀이 역사적 첫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별예선과 순위결정전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5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밖에도 남북은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인 황충금 선수와 남측의 봅슬레이 원윤종 선수가 한반도기를 맞잡으며 공동기수로서 스타디움을 빛내기도 했다. 외신들 역시 단일팀 등 평창 속 남북 이슈에 큰 관심을 보냈다.
#4. 평양을 수놓은 레드벨벳의 ‘빨간 맛’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조용필이 열창하고 있다. 2018.4.3 연합뉴스
4월 1일과 3일 평양의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은 변화의 물꼬를 튼 남북관계를 대내외에 알린 초대형 문화 이벤트였다. 이 공연 현장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예고도 없이 직접 참관하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봄이 온다’라는 부제를 단 이 공연에는 단장 윤상을 포함해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강산에, YB, 백지영, 정인, 서현, 김광민, 알리 그리고 레드벨벳 등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전부터 레드벨벳의 히트곡 ‘빨간 맛’이 평양에서 울려 퍼지면 어떻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는데, 이 우스갯소리는 현실이 됐다.
YB, 조용필, 이선희 등 이미 평양 공연 경험이 있는 뮤지션들은 평양시민들에게 더욱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실제 실향민 부친을 둔 강산에는 부친의 아픔을 담은 ‘라구요’를 열창하며 평양시민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무엇보다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은 손수 공연단을 격려하며 격식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는 ‘레드벨벳’을 직접 언급하며 남한대중가요에 대한 평소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5. 드디어 성사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를 하고 있는 남과 북의 정상.
올해 남북관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이다. 회담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1차 회담을 시작으로 약 한 달 뒤인 5월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2차 회담, 그리고 올해 가장 농도 깊게 진행된 9월 18~20일의 제3차 회담까지 연이어 진행됐다.
제1차 회담은 북측 최고지도자의 첫 남측지역 방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이른바 ‘도보다리 산책’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과연 두 정상 사이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깊은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로 명장면이 됐다. 남북정상은 첫 번째 만남에서 ▲남북관계 개선 및 발전 ▲남북 간 긴장완화 및 전쟁위험 해소 ▲정상회담 정례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내용이 담긴 합의문을 도출했다.
두 번째 회담은 북미관계가 안갯속을 걷고 있는상황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적인 요청에 의해 실현됐다. 회담의 핵심은 북측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 표명이었고,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백미는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대표단은 9월 18일 전용기를 통해 평양순안공항으로 입국했다. 첫날 공동 일정을 소화한 남북정상은 다음날 이른바 ‘평양선언’을 도출한다. 선언문에는 ▲비무장지대 등 대치지역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포함한 남북경제협력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상호노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한 답방 등 앞서의 합의문보다 훨씬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했다. 선언문과 함께 남북 군 당국은 별도의 ‘판문점선언이행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며 보조를 맞췄다.
#6. 평양시민 앞에선 남측의 최고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남북정상회담 기간 동안 환대해 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18.9.20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서 별도로 꼭 주목할 장면이 있다. 바로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집단체조를 관람한 후 직접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약 15만 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장장 7분여 간 연설을 시행했다.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단체조를 관람한 바는 있지만, 남측의 최고지도자가 북한주민들 앞에서 직접 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내용을 열거하며 민족적 협력을 강조했으며 평양시민들로부터 박수세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의 육성연설은 전 세계로 생중계 됐으며 평양시민들은 그의 연설을 아무런 제재나 연출도 없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 남북 정상과 대표단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함께 올라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7. 북한 핵실험의 심장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길주 AP=연합뉴스)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사진은 2번 갱도와 옆 관측소 건물의 폭파되는 과정.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말그대로 북한 핵실험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지난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포함해 모두 여섯 차례에 걸친 지하 핵실험이 진행됐다. 연구단지가 위치한 영변과 함께 북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 4월 21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회담이후인 5월 24일 갱도 폭파 방식으로 폐쇄를 이행했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외신을 초청한 북한 당국은 폭파 장면을 공개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유력 대북연구소인 3.8노스가 실질적인 폐쇄 여부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을 내보이며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북한 스스로 약 12년 만에 자국의 핵실험장을 공식적으로 폐쇄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측면이다.
#8. 역사적 첫 북미정상의 만남...싱가폴 서밋
68년 냉전 녹인 ‘세기의 담판’…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연합뉴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성사된 북미정상회담은 우리 한반도는 물론 세계사적으로 굉장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냉전종식 이후 사실상 가장 극단적인 반미국가인 북한과 그 대항의 당사자인 미국 간 정상회담은 전 세계 외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더군다나 양국 정상은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해 왔던 앙숙지간이었다.
사실 양국 정상은 실제 회담 성사까지 끊임없는 고도의 심리전과 기싸움으로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 성사를 위한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의 외교라인이 큰 역할을 했다.
어렵게 성사된 북미정상회담은 약 네 시간에 걸쳐 정상 단독회담, 확대회담, 오찬, 합의문 도출로 이어졌다. 양국 정상은 합의문을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노력 ▲미국의 전쟁포로 및 행불자 유골발굴과 즉시 송환에 합의했다.
양국의 회담은 이른바 비핵화와 그에 따른 종전이행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구체성 측면에서 기존 판문점 선언을 답보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한편 북미정상은 최근 두 번째 회담 성사를 앞두고 여전히 물밑 기싸움을 진행 중이다.
#9. 모든 적대행위가 사라진 DMZ 그리고 두 손을 맞잡은 남북의 군
두 손을 맞은 남과 북의 군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이행에 돌입했다. 남북의 군은 우선 10월~11월 사이 JSA 내 모든 지뢰를 제거했으며, 10월 25일 JSA의 모든 무장을 해제했다.
11월 1일부터 남북은 합의에 따라 DMZ에서의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했으며, 11월 11일 시범적으로 GP 철수를 완료했다.
백미는 지난 11월 22일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부근에 남북 간 전술도로가 연결되는 장면이다. 이 지역은 남북 간 전쟁당시 최대 격전지로 유명한 곳으로 정전협정 이후 무려 65년 만에 양측 간 군용도로가 연결된 셈이다.
당시 남북의 군은 공병대를 투입시켜 도로공사를 진행했는데, 서로 조우하며 악수를 나누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10. 드디어 시작된 남북 도로 및 철도 연결사업
북한의 판문역에서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의 착공식이 진행됐다. 2018.12.26 연합뉴스
12월 26일엔 남북 간 역사적인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이 진행됐다.
사실 이번 착공식은 앞서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연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북미관계의 부침, 유엔의 대북제재조치 등 여러 난제가 겹치며 실제 성사가 불투명했다. 일각에선 착공식이 내년으로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남북은 예정된 착공식을 크리스마스 다음날 열렸다. 착공식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과 리선권 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 등 북측 대표단 200여명이 북측 판문역에 모여 진행됐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