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안을 놓고 내홍에 휩싸인 당에 대해서는 기득권에 기댄 신주류와 개혁에 반발하는 구주류 모두를 향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4월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 고문을 만나 아직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대통령과 당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 조순형 고문은 당내 갈등에 대해 구주류를 설득 해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 ||
▲‘개혁’에 대한 말만 무성했지 사심을 버리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선 직후 개혁안이 마련됐지만 기득권과 자리에 미련을 가진 인사들로 인해 개혁취지가 변질되고 퇴색됐다. 여기에 신주류·구주류 간의 대립도 한몫하고 있고.
─어제(4월3일) 신주류 강경 개혁파가 현 지도부 사퇴를 촉구했다.
▲현 지도부는 벌써 사퇴했어야 한다. 대선 직후 물러났어야 할 한화갑 대표가 대통령 취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물러난 거나 현 지도부가 명분없이 유지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거다. 개혁안이 변질된 데는 개혁특위의 책임도 있다. 적당히 타협한 결과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도부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게 지켜지지 않다보니 개혁안이 퇴색하고 변질된 거다. 본래 취지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향한 거지.
─개혁안 중에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이라면.
▲크게 봐서 지도체제와 지구당위원장 폐지 문제다. 지도체제의 경우 (개혁)원안은 집행위원장이 명목상 당을 대표하고 호선(互選)하도록 돼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직선하는 게 좋겠다’고 하니까 갑자기 대표 직선제로 바뀐 거다.
호선하자는 것은 대표 권한을 약화시키고 원내형 정책정당을 지향하자는 취지다. 당권 경쟁 소멸 의도도 있고. 그런데 직선을 하면 제왕적 당권이 부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권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당권 경쟁하면 계보정치가 살아나고, 계보정치 하게 되면 비정상적 정치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개혁과는 정면배치되는 셈이다.
지구당위원장 폐지는 당초 개혁안에 없었다. 원내정당화를 위해 지구당을 폐지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문제의 본질은 중앙당위원장을 직선으로 하는 데 있다.
─당 개혁과 관련, 신주류 일부에서 신당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신당 얘긴 개혁이 잘 안되니까 하는 압력용 아닌가. 현실성이 적다고 본다.
─당 개혁이 무산될 경우 결국 신당 창당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신당이냐 당 개혁이냐 하는 것은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직결돼 있다. 하지만 신당을 할 경우 동참할 의원이 몇이나 되겠나. 자칫 (총선에서) 실패할 위험도 있다. 지금의 당을 유지하면서 개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대선 직후인 지난 12월 말 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다수가 결단하면 당이 발전적 해체를 해서 새 정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봤다. 그런데 동참하는 의원이 적었다. 결국 시기를 놓치게 됐다.
─신주류 일부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하고, 노 대통령의 탈당이 신당 창당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새 정부 6개월이 중요하다. 집권한 지 얼마나 된다고 탈당 얘기가 나오나. 중요한 시기에 집권당에서 신당한다 탈당한다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잘했든 못했든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정부 여당이 출범 초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개혁안뿐만 아니라 당내 사안을 놓고 신·구주류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구주류에 대한 입장은.
▲그들도 당 구성원 아닌가. 의견을 존중하고 설득해서 공존해야 한다.
─출범 40여 일이 지났는데 그간의 노무현정부를 평가한다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한 점은 잘못됐다고 본다.
─잘못된 부분 중에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인사문제다. 최근 KBS 사장 인선도 그렇고. (노 대통령이) 노력을 많이 하지만 측근 위주 인사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된다고 본다. 후보자 시절 노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를 했다. 본인과 가까운 사람이나 측근은 한 사람도 들이지 말라고. 물론 그렇게 하면 의리 없고 인정 없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주면 된다.
─최근 검찰과 공무원 조직에서 행해진 서열파괴식 인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인사쇄신의 측면이 있지만 검찰, 군인, 공무원 조직에서 기수 서열이 형성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서열파괴식) 인사쇄신을 할 수 있지만 다음번 인사는 어떻게 할 건가. 조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검찰과 공무원은 특히 경험과 경륜이 필요한 조직이다. 인사조치를 잘못하면 인적자원을 낭비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민주당 개혁파의 수장으로 당과 노 대통령에게 한마디 한다면.
▲당은 빨리 개혁을 이루고 집권당으로서의 체제를 갖춰 국정운영에 책임을 지고 내년 총선을 대비해야 한다. 기득권에 집착하다보니 우왕좌왕하다 적당히 타협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개혁은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다. 지금처럼 개혁이 변질된 상태에선 현 제도를 유지하고 총선 후에 개혁하는 것이 국민 앞에 떳떳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국가를 통합하고 국정을 수행하는 국가원수인 만큼 과거 정치인일 때 하던 즉흥적인 직설화법이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또 측근정치는 장점도 있지만 폐해도 있는 만큼 가급적 자제해야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