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경제난제들 중 상당수가 끝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차기 정부에 커다란 짐으로 떠넘겨지게 됐다.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 경제난제들은 그 출발점이 어디였든 간에 해결되기까지는 적잖은 난관과 이해대립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 문제들 중에는 해결의 시점이 늦어질수록 경제난을 가중시킬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문제도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현대그룹이 남긴 4대 악재]
차기 정부가 떠안게 될 가장 큰 난제는 현대증권, 현대투신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금융 3사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현대그룹이 남긴 4대 악재. 한국 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남아 있는 이들 4사는 추가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 또다른 폭탄으로 떠오를 소지가 충분하다.
현대투신증권,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현대 3개 금융사는 2000년 6월 미국계 투자회사인 AIG와 매각 양해각서 체결까지 갔지만, 잠재부실 보전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아 2년 만에 무산됐다. 올 들어 푸르덴셜 등 해외 금융기관들이 관심을 보여 금감위 책임 아래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는 상황.
최대 ‘계륵’인 하이닉스반도체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매각협상이 무산된 후 독자 생존론과 매각 재추진론 등 중구난방식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으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자문사인 도이체방크가 최근 출자전환, 만기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채무재조정안을 제시했으나 투신 등 2금융권이 반발하고 있어 채권단의 동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하이닉스는 채무조정안이 받아들여져도 장기적으로 생존할지 여부는 미지수여서 차기 정부 역시 이 회사의 처리문제는 쉽게 가닥을 잡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현대 금융3사와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현정부의 잘못된 정책실행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는 것이 중론. 현대투신 부실의 출발은 지난 98년 자의반타의반으로 한남투신을 인수한 것이 출발이었다.
대우채 부실로 현대투신이 입은 손실은 1조원. 결국 현대투신 등 금융 3사는 5조∼6조원대에 이르는 부채더미에 올라앉고 만 것이었다.
[3년째 공회전 대우증권 매각]
대우그룹 침몰과 함께 부채처리를 위해 시장매물로 나온 대우증권은 3년째 매각시도만 이어지고 있다. 매각 주체가 산업은행으로 넘어갔지만,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을 넘겨받은 것은 2000년 5월. 산은은 당시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것”이라며 조속히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은은 말을 바꿔 대우증권을 산하 핵심 증권사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산은은 채권 전문 증권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산업증권을 세웠다가 부실경영으로 퇴출시킨 전례가 있다. 하지만 당시 산은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원장은 이 같은 산업은행 청사진을 지지했다. 이후 산은의 계획이 재경부와 정치권의 제동으로 무산됐고, 대우증권은 다시 매각대상에 올랐지만, 이러는 동안 3년의 세월만 허비했다. 그런데도 산은은 여전히 느긋하기만 하다.
산은측은 “주가하락으로 매각조건이 불리한 만큼 손해를 보면서 팔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산은이 예상하는 매각가는 1조원 안팎. 그러나 업계에서는 “지나친 기대와 환상”이라며 산은의 저의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차일피일 매각이 늦춰지면서 대우증권의 부실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우사태 이전만 해도 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대우증권은 현재 시장점유율 5위권으로 수직하락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대우증권 내에서는 지난 8월 2백50억원 규모의 델타정보통신 기관계좌 도용사건이 터졌고, 1백70억원대 신협 계좌 횡령사건이 발생하는 등 초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신뢰도와 시장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있다.
상장 경제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생보사 상장 문제도 북소리만 요란했을 뿐, 업계와 금융계의 이해관계에 걸리면서 결국 구두선에 그쳤다. 생보사 상장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면화됐다.
실제로 삼성, 교보생명은 지난 89년, 90년 기업공개를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평가 적립금의 처리 문제와 증시 침체로 인한 수급 부담 때문에 불발됐다. 그러다가 삼성자동차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98년 이건희 삼성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백만 주를 출연하면서 다시 부상했다.
채권단은 주식의 객관적인 시세평가를 위해서는 상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고 삼성측도 이에 동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헌재-이용근 금감원장의 주도로 수차례의 공청회와 생보사 상장 자문위를 출범시키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상장 차익 중 상당액을 보험계약자들의 몫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면서 이 문제는 다시 벽에 부닥쳤다.
결국 2000년 8월 이근영 금감원장이 “생보사 상장에 따른 주식을 보험계약자에게 배분하는 것은 현행법상 어려움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후 삼성차 채권단을 중심으로 생보사 상장 문제의 조기매듭을 요구하고 있으나, 금감원 등 당국은 법 논리와 시민단체의 반발 사이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
결국 이번 정권 내 해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생보사 상장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공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십조원대(2002년 현재 기준으로 18조∼20조원대로 추정)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상장 차익 때문. 생보사들은 상장이 될 경우 상장에 따른 자본 이득의 일부를 계약자에게 돌려준다는 생각이지만, 주식을 계약자에게 배분하는 방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생보사 상장 논란의 발단이 삼성차 처리를 둘러싼 현정부의 강제적 기업구조조정(빅딜)의 산물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또 생보사 상장이라는 재료로 금융시장의 분위기를 띄우려 한 얼굴없는 세력의 분위기 조장도 책임이 있다.
말만 그럴듯하게 해놓고, 차일피일 시간만 보낸 결과 금융시장이나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이 문제도 차기 정부의 또다른 우환거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