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선 부회장 | ||
현대가 3세들 중 가장 먼저 부회장 반열에 오른 그의 인사가 워낙 파격적인 까닭이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현대백화점도 대선 직전일인 12월18일을 택해 전격적으로 단행하고, 대선열기 속에 조용히 묻히길 바랐던 듯하다. 그러나 이 인사는 현대백화점의 바람과는 달리 현대가 내부에서도 매우 놀라는 분위기였다.
현대가 다른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예상밖의 인사”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이 인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병규 전 사장의 퇴임과 더불어 정지선 부사장의 승진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그만큼 크기 때문.
정 부사장의 파격적인 승진은 최근 승진한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 등 현대가 3세들이 경영 전면으로 급부상한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여질 수 있다. 또 이 전 사장이 고문으로 밀려난 것도 왕회장의 가신 경영인들의 몰락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특히 현대백화점측은 불과 몇 달전 정몽준 의원이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후 그를 보필할 참모로 이 전 사장이 거론될 때마다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향후에도 백화점 경영에 몰두하실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 같은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현대백화점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 전 사장의 퇴임, 정 부사장의 승진이라기보다는 소그룹 체제를 갖춰 새출발한다는 시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 정몽근현대백화점 회장 | ||
현대백화점 내부에서도 이번 인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내부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면서도 “오너와 관련된 문제라서 조심스럽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현대백화점이 이번 인사를 단행한 배경은 뭘까.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지난해 9월말 단행된 현대백화점의 회사분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회사를 기존 유통사업을 담당하는 현대백화점과 기존 회사의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현대백화점 H&S로 분리했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측은 “현대백화점과 현대H&S, 호텔현대, 현대홈쇼핑, 한국물류 등 19개 계열사를 갖춘 그룹체제를 형성, 소그룹별 독자 운영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그룹경영 체제는 정몽근 회장이 그룹 총괄회장을 맡고, 그 밑에 정지선 부회장이 중간 총괄책을 맡으며, 이들 부자 밑으로 19개 계열사를 수직관계로 묶는 경영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는 것.
백화점 분할과정에서 현대백화점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해온 하원만 경인지역본부장이 급부상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하 본부장은 올해 1월1일자로 현대백화점 사장으로 승진발령을 받았다. 이병규 전 사장이 퇴진한 자리를 하 본부장이 이은 셈이다.
이번 인사는 기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서둘러 오너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전 사장의 퇴임과 정 부사장의 승진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각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해석의 배경에는 올초부터 새어나온 현대백화점 경영진 내분설이 작용한 듯하다. 현대백화점 홍보실은 이에 대해 “이병규 사장이 사장직을 물러난 것은 항간에서 나돌던 오너와의 갈등설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항”이라며 펄쩍 뛰었다.
또 “이 전 사장이 3년9개월이나 재직해 고문직으로 물러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부사장이 이번 인사로 그룹총괄 부회장에 오르기는 했으나 이후 오너십을 갖춘 후계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지분 확보 등의 후속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