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일부 입주민들이 우 회장을 상대로 “부당하게 챙긴 돈을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대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지면서 우 회장은 형사처벌 가능성도 높아졌지만, 2019년 3월 현재까지 입주민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가진 재산이 없다”는 이유다.
우경선 회장은 1975년 신안건설산업을 설립해 중견 건설그룹으로 성장 시켰다. 현재 주택, 토목, 건설과 호텔, 골프장, 여신금융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우 회장은 서울시의회 의원,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일명 ‘건설현장 부패와의 전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건설사 오너가 직접 아파트 건설 현장의 납품, 감리 등 비리 의혹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고 검찰에 고발하고 나서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우경선 신안건설산업 그룹 회장이 공공임대아파트 과정에서 입주민을 속여 수십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사진=이종현 기자
# 우 회장, 아파트 분양 전환 과정서 수십억 원 ‘웃돈’ 챙겨
문제가 된 공공임대아파트 임대 사업자는 신안건설산업그룹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신안주택’이다. 이 회사가 아파트를 직접 짓고 임대 사업을 했는데, 법인이 아닌 우경선 회장의 개인사업장으로 등록돼 있다.
‘일요신문’이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로부터 입수한 법원 판결문과 사건 자료 등에 따르면, 신안주택은 2013년 2월부터 2014년 4월 사이 전남 목포시 신안비치팔레스 1차 아파트 입주민들과 분양전환 계약을 체결했다. 신안비치팔레스 1차 아파트는 5년 임대아파트로, 2010년 입주자 대표회의 신청에 따라 분양전환됐다. 공공임대아파트는 민간 사업자가 건물을 짓고 정해진 기간 동안 임대사업을 한 뒤, 일반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다.
분양전환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건 가격이다. 이는 임대주택법에 따라 정해진다. 신안비치팔레스와 같은 5년 임대아파트의 경우, 2곳 이상의 감정평가 기관이 평가하고 지자체가 승인한다. 김정철 변호사는 “이는 강행 규정으로, 최종 승인된 분양전환 가격을 넘어서는 금액은 전부 무효”라며 “공공임대아파트의 임대 사업자는 세제와 정부지원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만큼 분양 전환을 할 때 사업자가 과도하게 가격을 부풀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목포시가 승인한 신안비치팔레스 1차 아파트의 분양전환 가격은 약 9000만 원. 그런데 입주민들은 신안주택에 가구당 1억 원이 넘는 돈을 냈다. 최소 1000만 원에서 최대 2000만 원 가량을 더 낸 셈이다. 입주민은 총 802 가구였고. 이 가운데 752 가구가 당시 분양전환 대상이었다. 입주민들이 정해진 분양전환 가격 외에 더 낸 추가 비용은 단순 계산으로도 80억 원에 달한다.
입주민들이 추가로 낸 돈은 신안주택이 베란다 확장 및 섀시 공사비 명목으로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공사들이 분양계약 10년 전인 2003년, 아파트 완공 당시 이미 시행됐다는 점이다. 공사비용도 2008년과 2009년 감정평가를 통해 이미 분양가격에 반영돼 있었다. 분양계약 전후로도 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 회장이 하지도 않을 공사를 대가로 분양가를 부풀려 웃돈을 받았다는 얘기다.
# 대행업체가 주도, 우 회장도 알고 있었나
‘일요신문’이 입수한 사건 자료를 종합하면, 웃돈을 받는 과정에 한 분양대행업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업체는 신안비치팔레스 1차 아파트 분양 전환이 이뤄지기 전 신안주택의 분양 대행 의뢰를 받고 분양 상담부터 계약 체결은 물론 웃돈을 받는 과정 전반에 개입했다.
전말은 이렇다. 대행업체는 입주민들에게 “분양 전환을 위해선 베란다 확장과 섀시 공사비 명목으로 가구당 1000만 원 씩을 ‘현금’으로 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돈을 내면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별도의 합의서 작성도 요구했다. 일부 입주민에겐 목포시에서 승인한 분양전환 가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공사비용이 분양가격에 포함돼 있다”고 안내했고, 웃돈을 내지 않는 입주민을 상대로 명도소송(건물‧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 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안주택이 분양 전환 과정에서 입주민들에게 작성하도록 요구한 합의서. 분양가격과 별도로 베란다 및 섀시 공사 비용으로 1000만 원을 내기로 약정하고, 차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법원은 이 합의서에 대한 법적효력을 인정 하지 않았다.
웃돈에 더해 또 다른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주택자가 아니거나, 임대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해 분양전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입주민들은 공사비용과 별도로 1000만 원을 더 냈다. 업체가 “분양 자격이 없더라도 웃돈을 내면 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앞서의 명도소송을 벌였던 일부 입주민들에게는 신안주택이 재판 과정에서 썼던 비용 130만 원을 추가로 받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급된 웃돈의 흔적은 대행업체가 작성한 장부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대행업체는 베란다 확장 및 섀시 공사비를 받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법정 증언 녹취록에 따르면, 대행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한다. “아파트(신안비치팔레스)에 베란다 확장 공사가 돼 있었다. 대행업체 대표가 웃돈을 받기 위해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했다. 그 비용으로 웃돈을 받으면 어떨까 해서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분양전환 가격을 초과해 돈을 받으면 불법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대행업체의 대표는 다른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웃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2013년 구속됐다.
우경선 회장 역시 이 ‘작업’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입주민들이 낸 현금이 한 푼도 빠짐없이 신안주택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앞서의 대행업체 신안주택과 관계없이 벌인 ‘일탈’로만 보기엔 어려운 정황이다. 앞서 관계자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웃돈으로 받은 현금은 대행업체 측 통장에 먼저 입금됐고, 이후 신안건설산업의 ‘우 실장’이라는 관계자가 통장과 도장을 보관하면서 돈을 인출했다. 이 통장은 분양전환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운용됐다.
일부 입주민이 웃돈으로 지급한 수표로도 이러한 정황이 드러난다. 분양계약 전후로 이 수표들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국민은행에 지급 제시 됐는데, 이 은행은 신안건설산업그룹 본사와 500m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우 회장의 주거래 은행이었다. 그밖에 재판 과정에서 “우 회장과 대행업체 대표가 웃돈을 받는 방식에 대해 협의했다”거나, “우 회장이 대표에게 가구당 10% 이상의 수수료를 줬다”는 취지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신안주택이 입주민들로부터 받은 웃돈. 가구당 최소 1000만 원부터 최대 2300만 원을 더 냈다.
# “우 회장 형사처벌 가능성 높아” 신안건설그룹 “반환할 것”
지난 2014년 8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입주민들이 신안주택의 개인 사업자인 우경선 회장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6년 6월 서울 중앙지법 제47민사부는 “우 회장은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임대주택법 취지에 비춰 분양전환 가격 준수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베란다 확장 및 섀시 등 공사비는 분양전환 가격에 포함돼 있었으므로 정당한 분양가격을 초과했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쳐 2018년 6월 확정됐다.
이번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입주민은 총 110가구. 이들이 우 회장에게 낸 웃돈만 총 16억여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60가구가 법원 판결에 따라 약 6억 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나머지 50가구는 웃돈을 낸 사실은 입증됐지만, 무주택자가 아니거나 의무 임대 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등 분양전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제외 됐다.
소송을 제기한 입주민은 당시 신안비치팔레스 1차 아파트 분양전환 대상 총 752 가구 가운데 일부다. 1차 아파트 바로 옆에 위치한 신안비치팔레스 2차 아파트까지 포함하면 신안주택이 챙긴 부당이득금 규모는 더 커진다. 2차 아파트도 1차 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분양 전환됐다. 두 아파트를 합치면 부당이득금은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웃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신안주택을 상대로 입주민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사진=제보자
신안주택이 우 회장의 개인사업장인 만큼, 법원이 부당이득이라고 결정한 금액은 우 회장이 직접 반환해야 한다. 그러나 우 회장은 아직까지 부당이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소송에서 승소한 입주자 60명이 강제집행으로 압류 등에 나섰지만, 우 회장의 개인 자산이 없거나 선순위 채권자가 있어 집행이 불가능했다. 참고로 신안건설산업은 2017년 기준 매출 722억 원, 순이익 128억 원을 기록했다. 100억 원 대 이익을 내는 회사 수장의 재산이 한 푼도 없었다는 얘기인데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관련기사 [단독] 우경선 신안건설그룹 회장 ‘임대주택 비리’ ②…회장님의 수상한 자금흐름과 ‘편법 증여’ 의혹)
다만 지난 2월 일부 입주민에게는 돈을 반환했다. 법원이 입주민 3명의 신청에 따라 우 회장에 대해 재산명시 명령을 해서다. 우 회장은 이들에게 각각 1200만 원 씩 총 4600만 원을 반환했다. 재산명시 명령이란 지급 명령을 받은 채무자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채무자 스스로 법정에 나와 본인의 재산 목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다. 재산 내역을 제출하지 않거나, 돈을 반환하지 않으면 감치(일시적으로 구속되는 것)에 처해질 수 있다. 우 회장은 재산내역 공개 대신 돈을 반환했다.
이 사건을 대리한 김정철 변호사는 “입주민 대부분은 고령이고, 당시 이 아파트에서 계속 지내길 원하고 있었다. 서류상 40~50대 입주자들도 일부 있지만, 실거주자들은 모두 고령이다. 이들은 왜 웃돈을 내야하는지 꼼꼼히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살던 집에서 덜컥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돈을 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우 회장은 임대주택법 위반, 사기, 차명계좌를 이용한 조세포탈 등 혐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입주자들이 고령이라 고소인 진술이 힘들어 형사고소가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신안건설산업그룹 측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분양대행사가 분양전환 업무 전반을 맡았고, 합의서도 작성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앞서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우 회장 측이 줄곧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그러나 법원은 분양대행사 책임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합의서는 오히려 분양전환 당시 우 회장 측이 불법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돼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안건설산업그룹 한 임원은 “아파트 건설 당시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하고도 당시 이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었다. 분양대행 업체로부터 분양전환 과정에서 이 비용을 분양 전환할 때 포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진했다”고 재차 강조하면서도 “공사비용이 신안주택으로 들어온 건 맞다. 당시 임대주택법을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다. 현재 우경선 회장과 회사 등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당이득금 반환이 늦어지고 있을 뿐, 전액 반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