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역 사업에선 지역균형발전 평가 항목을 없애고 경제성 평가 비중을 대폭 늘린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균형발전 평가 비중을 확대해 거점도시 등의 예타 통과율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예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복지 사업에 대해선 전달체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사업 추진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평가 방식을 조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사진= 고성준 기자
정부는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12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예타 제도란 공공투자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 사업비가 500억 원을 넘고 국고 지원금이 300억 원 이상인 건설·연구개발(R&D)·정보화 사업과 중기 지출 규모 500억 원 이상인 복지 사업이 대상이다.
사업 주무 부처에서 타당성 조사를 하기 전 기재부에서 미리 검증해 ‘불요불급(不要不急, 필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한 대형사업 추진을 막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제도가 도입된 후 지난해까지 386조 3000억 원 규모의 849개 사업에 대한 예타가 수행됐다. 이 가운데 35.3%를 차지하는 300개 사업(154조 1000억 원 규모)은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돼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도입 20년을 맞아 제도의 전면 개편안을 마련했다.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간 지속해서 나왔었지만, 올해 초 정부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총 사업비 24조 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계획을 내놓으면서 한층 높아졌다. 정부가 면제 대상 사업을 발표하면서 상반기 중으로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종합 평가(AHP, Analytic Hierarchy Process) 단계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을 달리 적용하고 가중치도 조정하는 것이다. 종합 평가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 분석 결과를 종합해 사업의 적절성을 계량화된 수치로 도출하는 예타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AHP 결과가 0.5를 넘으면 사업의 타당성이 확보됐다는 뜻이다.
기존에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 분석에 대한 가중치를 각각 35~50%, 25~40%, 25~35%의 비율로 적용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수도권 사업은 지역균형 항목을 빼고 경제성과 정책성으로만 평가한다. 가중치는 각각 60~70%, 30~40%로 경제성 비중이 크게 늘었다.
비수도권에서는 경제성 평가 가중치를 낮추고 지역균형 평가는 높인다. 각각 30~45%, 30~40%로 조정된다. 수도권 중 ‘접경’·‘도서’와 ‘농산어촌’ 지역은 비수도권으로 분류한다. 다만 경기도 고양시 등 ‘수도권 정비계획법’ 상 과밀억제권역은 접경·도서 지역이라도 수도권에 속한다.
복지·소득이전 사업에 대한 평가 방식도 개편한다. 복지 분야 예타 수요는 2009년 74조7000억원 수준에서 올해 161조 원으로 115.8% 불어났다. 사업이 추진되는 시기와 방법, 규모 등의 적정성 검토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다.
경제성과 정책성만을 분석했던 현행 체계에서 ▲경제·사회 환경 ▲사업 설계의 적정성 ▲비용-효과성 등 항목별 점검 방식으로 전환된다. 100점을 기준으로 각 항목별 평가 결과를 점수화한 후 3개 항목에서 모두 85점 이상이 나오면 적정한 사업으로 평가한다. 3개 중 일부가 85점에 못 미치거나 2개 이상이 70점을 넘는 경우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수용할 것을 전제하는 조건부 추진을 허용한다. 2개 이상 점수가 70점에 못 미치면 사업을 전면 재기획해 재요구하도록 한다.
정부는 다음달 1일까지 예타 운용지침 개정 작업을 마치고 개편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변경된 평가 방식은 조사 중인 사업부터 바로 적용된다.
지난달 말 기준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신분당선 광교~호매실사업, 제2경인선 광역철도 건설사업, 경전선 전철화(광주송정~순천 단선), 문경~김천 단선전철사업,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 계양~강화 고속도로 건설사업, 제천~영월 고속도로 건설사업(국토부), 부강역~북대전IC 연결도로(행복청), 금강지구 영농편의 증진사업, 초등학교 과일간식 지원사업(농림부),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 구축사업(법무부), 차세대 지방재정관리시스템 구축(행안부) 등이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