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9일 일시귀국 일정을 마친 이회창 전 총재 부부가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
최근 다시 불거진 ‘20만달러 수수설’ 논란과 세풍 사건 재수사 등으로 이 전 총재 이름이 자주 거론되면서 오히려 그의 최근 생활과 속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 머무는 이 전 총재는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을까. 과연 그곳에도 세풍 등의 여파가 미치고 있을까. 측근들과 현지 한인들의 눈을 통해 이 전 총재의 ‘요즘’을 들여다봤다.
이 전 총재의 미국 생활에 대해 측근들은 지극히 ‘조용하고 평범한’ 모습이라고 입을 모은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위치한 스탠포드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이 전 총재는 얼마 전 학교 앞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이 전 총재를 수행해 온 한 측근은 “인근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방 두 개짜리 조그만 아파트를 1년 임대해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이 전 총재의 근황을 밝혔다. 이 측근은 “(이 전 총재가) 집과 학교 이외에 다니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라며 “가끔씩 지인들이 찾아와 드라이브를 함께 즐기는 게 ‘취미생활’의 전부”라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몇몇 측근에게 “운전면허나 따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국내에 있을 때 운전면허가 없었다. 한 측근 인사는 “젊은 시절부터 법관생활을 해서 그런지 거의 운전기사가 곁에 있었고 이 전 총재 스스로 운전할 일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승용차가 없으면 외출하기 어려운 곳인 만큼 면허증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당분간 무면허 신세로 지낼 듯하다. 물론 미국 현지에 자기 명의의 승용차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따로 운전 연습할 틈이 별로 없었다”면서 “현지에 있는 지인들이 자가용이 필요할 때마다 와서 이 전 총재를 도와주곤 한다”고 밝혔다.
미국 내 이회창 후원회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지인 몇 사람이 자주 이 전 총재 집을 방문하고 있으며 이 전 총재가 사적으로 만나는 외부인사들은 이들이 전부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전 총재가 이처럼 바깥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측근인사는 “(이 전 총재가) 한국인 식당에도 거의 안 간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얼마 전 (이 전 총재가) 한국인 식당에 한 번 갔는데 식당에서 마주친 몇몇 교포가 이 전 총재를 붙잡고 울면서 낙선을 슬퍼하는 바람에 상당히 난처해했다”고 설명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입장에서 아무리 외국이라 할지라도 민심을 자극하는 장면이 벌어지는 것에 이 전 총재가 심한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전 총재가 ‘꼭꼭 숨어’ 생활하는 탓인지 미국 교민 사회에서도 이 전 총재 관련 소식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 발간되는 교민 잡지 〈코리아나뉴스〉의 발행인 정채환씨는 이 전 총재의 생활을 ‘칩거’수준으로 표현한다.
정씨는 “한국 내 정치상황에 관심이 많은 교민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며 이들 사이에선 친미·보수 성향이 대세다. 이런 한인사회에서 이 전 총재에 대한 지지율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앞섰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계은퇴를 한 이 전 총재측도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만큼 현지 교민들과의 접촉을 자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미국 내 이회창 후원회도 해체된 상태고 이 전 총재 역시 교민 행사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탠포드 대학 인근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한 교민도 “이 전 총재를 직접 본 적이 없으며 주변에서도 동정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이 전 총재의 미국 생활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인 듯하다. 이 전 총재의 현지 비서역할은 스탠포드 출신 지상욱 박사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핵심측근에 따르면 실질적 보좌 역할은 아들 정연씨가 도맡고 있다고 한다. 올 초 이 전 총재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학교 서류 접수 등 세세한 사항들을 정연씨가 직접 챙겼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 인사는 “그 친구(정연씨)가 근무하던 하와이 동서문화연구원과의 채용 계약이 지난 2월 만료됐다”며 “현재는 아버지(이 전 총재) 일만을 돕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전 총재를 측근에서 보좌하던 또 다른 인사는 “정연씨 부부가 이 전 총재 거처 인근에 거주하면서 거의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에 이 전 총재의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은 없느냐’는 질문에 한 측근은 “사모님(한인옥씨)이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비서 업무는 아들 정연씨 등이 맡고 있지만 청소나 요리 같은 가사일은 한씨가 직접 도맡아 한다는 것. 근처에 거주하는 정연씨 부인도 집안일을 많이 거든다고 한다.
현재 서울 옥인동 이 전 총재 자택은 한 측근 인사가 매일 ‘출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이 전 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이 전 총재 어머님의 병환이 악화되지 않는 이상 올해 안에 귀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인사에 따르면 현재 이 전 총재는 귀국 이후 국내에서 펼칠 사회활동에 대한 구상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가 일각에선 요동치는 정치상황이 이 전 총재의 귀국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