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훈 대통령 경호처장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며 노무현 정권 때 주 처장의 ‘강임 사건’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정권 말 대통령 경호처에는 이상한 인사가 났다. 당시 2급 본부장이었던 주영훈 처장의 직위가 3급 부장으로 변경됐다. 강임이었다.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강임은 조직 제도나 정원의 변동, 예산 감소 등의 이유로 직위가 사라져 담당자의 급수가 낮아지거나 담당자가 강등에 동의한 경우를 말한다. 주 처장은 그렇게 2급 안전본부장에서 3급 전직부장이 됐다. 전직부장은 퇴임한 대통령을 경호하는 부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권이 바뀔 때 처장부터 2급인 본부장 급까지 물갈이되는 게 경호처의 관례였다. 후배에게 길을 터주는 의미에서 오래도록 내려 온 경호처의 유산이었다. 내부에서는 정년이 다 차지 않더라도 본부장 급 이상이 정권이 바뀌어 짐을 싸는 행위를 ‘전역’이라고 불렀다. 경호처 내부를 잘 아는 한 정부 인사는 “정권이 바뀌면 보통 본부장급까지 짐을 싼다. 정권 교체 시기에 인력풀이 많지 않을 때 종종 더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1년 정도가 한계다. 이번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런 경호처의 관례가 깨진 사례 가운데 하나가 주영훈 처장의 강임이었다. 주 처장은 2008년 2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자 대통령을 따라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2011년까지 3년을 더 일한 뒤 정년 퇴임했다. 경호처의 관례상 안전본부장을 지낸 주영훈 처장이 경호처에 근무할 수 있었던 실질적 한계는 2009년 초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퇴임 때쯤 급수가 낮아진 그는 2011년까지 경호처 소속으로 2년 더 일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상반된 반응이 흘러나왔다. 경호처 내부에 밝은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주영훈 처장은 당시 본부장일 때 노무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스스로 급수를 내려 봉하마을로 향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의 반응은 달랐다. 또 다른 한 고위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경호처에서는 주 처장의 강임을 두고 말이 많았다. 경호처 관례상 부장 자리는 다른 부장이 수평 이동하거나 과장이 승진 이동해야 하는 자리다. 본부장이 급수를 낮춰 이동할 자리가 아니다”라며 “주 처장은 강임을 할 게 아니라 전역했어야 했다. 당시 주 처장의 강임은 경호처의 ‘군번’이 꼬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일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주영훈 처장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랬다면 고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전직부장 자리를 내려놨어야 했다.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책임져야 했던 사람은 주 처장이었기 때문”이라며 “정작 그만둔 건 과장급 실무자였다. 당시 과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 사망 두세 달 뒤 스스로 그만뒀다. 반면 주 처장은 정년까지 꽉 채운 뒤에도 봉하마을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주 처장은 정년 퇴임 뒤에도 권양숙 여사의 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는 “조직 운용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일이었다”고 말했다.
주영훈 처장의 ‘갑질’ 의혹 탓에 청와대 경호처는 최근 언론 보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조선일보’는 8일 주 처장이 경호처 시설관리팀 소속 무기계약직 여성 직원을 자신의 관사로 출근시켜 주 처장 가족의 빨래와 청소, 쓰레기 분리 배출 등 개인적인 가사 도우미 일을 시켰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이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확인 조사한 결과 경호처 소속 공무직 직원이 통상 오전 2~3시간 이내 경호처장 공관 1층 청소 등 관리업무를 행한 사실은 있으나 경호처장 가족의 빨래,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 가사일을 부담한 사실은 일절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경호처는 “주 처장이 이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와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기사 3급 임용도 문제가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언론에 따르면 주영훈 처장은 노무현 정권 때 권양숙 여사의 운전기사였던 최 아무개 씨를 문재인 대통령 운전기사로 임용하며 3급을 줬다. “기동부장과 그가 관리하는 대통령 운전기사가 같은 3급이다. 기동부장을 포함한 부장들이 대통령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는 경호처 관계자들의 증언도 보도됐다. 3급 기동부장의 주 업무는 보통 대통령과 부인의 운전기사 관리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멀다고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영삼 정권 이래 대통령 운전기사는 모두 11명이었는데 3급을 받았던 운전기사는 모두 5명이었다. 박근혜 정권 때도 3급 운전기사는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는 최초 임용 시 3급을 받기도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