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태풍과 가뭄 등 원인으로 한라산 구상나무의 급격한 생장쇠퇴가 이뤄지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제주도
[일요신문] ‘살아 100년, 죽어 100년’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 구상나무가 죽어서도 제주 한라산 고사목이 돼 100년을 버틴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구상나무가 위기다.
지난 8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2017~2018년 한라산에 있는 침엽수종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한라산에는 총 100만 그루 가까이 구상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가운데 급격한 생장쇠퇴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한라산 구상나무의 쇠퇴도는 39%로 함께 조사한 덕유산(31%)과 지리산(25%) 등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6년의 한 보고서는 한라산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말라 죽으면서 금세기 안에 멸종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는 지구온난화, 태풍과 가뭄 등 원인으로 한라산 구상나무의 급격한 생장쇠퇴가 이뤄지며 멸종위기가 빠르게 닥쳐온다는 점이다.
산림청이 최근 전국 고산지역에 분포하는 7대 고산 침엽수종에 대한 분포도와 건강상태 등 생육현황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전국 고산 침엽수종의 실태조사’ 분석 결과 한라산 특산종인 구상나무 쇠퇴 현상이 전국 구상나무 분포지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7대 고산 침엽수종은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눈측백, 눈향나무, 눈잣나무, 주목 등 7종이다.
이들 7종의 분포면적은 전국 31개 산지 1만 2094ha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리산이 5198ha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으로 한라산이 1956ha의 고산 침엽수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라산은 기후변화에 따른 겨울철 온도상승률이 가장 높은 동시에 고산지역의 극한 기상특성도 크게 작용해 쓰러져 죽은 고사목이 매우 많이 발견됐으며 전체적인 쇠퇴도도 전국 주요 지역 중에서 가장 높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산 침엽수종의 숲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에는 어린 나무의 개체수가 적고 나무들의 연령구조가 불안정해 지속적인 개체군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한라산 구상나무 공간적 고사 패턴 분석을 통한 고사 원인 추정’ 논문에 따르면 최근 급속하게 진행 중인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증가, 증발량 감소 등으로 인한 토양의 수분 과다로 추정했다.
조사결과 구상나무 고사율은 한라산 남동부 백록담 일대에서 17.1%로 가장 낮았으며 북동부 1300~1400m 고도에서 87.7%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목의 급격한 증가는 지난 1990년대까지 천이, 노령화, 종간경쟁 등의 자연적인 고사가 주요 요인으로 발생됐으나 2000년대부터 기후변화에 의한 적설량 감소, 한건풍(寒乾風)에 의한 동계건조현상 등이 추가되고 최근에는 잦은 태풍, 집중강우 등에 의한 생육기반 악화에 따른 고사목 발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의한 고사 및 생장쇠퇴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고 기상이변, 병해충 피해 가능성 등 구상나무 고사원인의 다양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제주조릿대와 소나무가 침입하면서 생존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환경운동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은 남한 최대의 고산 침엽수 군락인 한라산 구상나무 서식지가 심각한 수준의 고사율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녹색연합은 지난 2016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한라산 등 국내 ‘아고산대 고산침엽수’의 집단 고사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담은 실태조사 보고서를 4월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최대 자생지인 한라산 진달래밭 일대 구상나무의 90%가량이 고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구상나무의 멸종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속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빨라지고 있다”며 “향후 10년 안에 구상나무 집단 군락이 사라질 것이며 이로 인해 생물다양성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은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의 종자형성에서 발아, 정착 및 성장에 이르는 단계별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고 이를 해소해 주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기온이 더욱 상승하면서 생리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병해충에 의한 피해도 예상됨에 따라 이에 대한 감시와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한라산연구소 또한 구상나무의 고사목이 다량 발생됨에 따라 제주도뿐만 아니라 환경부, 산림청, 문화재청 등 중앙부처와 국립산림과학원, 한라산연구소 등 국공립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협력체계를 구축, 구상나무의 보존‧복원 전략수립을 위한 다양한 연구 및 정책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임종환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생태연구 과장은 “멸종위기 고산지역 침엽수종 보전·복원을 위해 조사와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구상나무 보전에 대한 학술적 가치, 앞으로 구상나무를 어떻게 증식하고 복원할지에 대한 대책마련과 여러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유관 기관과 협력해 멸종위기 침엽수종의 보전에 적극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중심으로 해발 1300m까지 넓게 퍼져 있는 구상나무는 세계 유일의 순림(純林)인 한라산에 분포하는 한국특산식물로 국제자연보전연합(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에도 등재된 국제적인 가치를 지닌 수종이다.
현성식 기자 ilyo9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