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최태원 SK(주) 회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
재계의 관심은 SK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그룹 수뇌부의 재산 거래 내막이 어떻게 검찰에 포착됐는지 하는 부분.
그룹 핵심만이 알 수 있는 극비문서 존재에 대해 검찰이 이미 그 문서가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SK의 내부자 협조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때문에 재계의 관심은 SK 내부의 갈등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17일 SK 계열사 세 곳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은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목표물을 향해 돌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쪽의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빌딩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은 정확하게 관련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움직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회장실을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은 부속실에 달린 탕비실부터 뒤졌다는 것. 관련서류가 그곳에 있다는 사전정보를 알지 못했더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찰에선 이번 압수수색건과 관련해 지난해 12월께부터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에서 지난 1월 고발한 ‘JP모건 이면계약 건’ 이전에 검찰에서 SK와 워커힐호텔의 내부자거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의 발단과 관련, 재계에선 SK의 내부사정에 주목하고 있다.
최씨 일가의 복잡한 경영권 상속 구도나 최근 SK를 떠난 전문경영인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는 것.
먼저 최씨 일가의 경영권 상속 구도.
알려진 대로 최태원 회장은 그룹 2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다. 그룹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의 2세들은 그룹 경영의 핵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때문에 최종현 회장 별세 이후 재계에선 사촌간의 경영권 분할에 대해 큰 관심이 쏠렸었다. 최 회장 사망 이후 SK는 최종현 회장의 오른팔이던 손길승 회장을 전문경영인 회장으로, 최태원 회장을 SK(주) 회장으로 승진시켜 투톱 체제를 만들었다.
물론 최종건 회장의 2남인 최신원 회장을 SKC 회장으로 승진시켜 사촌간에 균형을 맞췄지만 그룹의 경영권과는 거리가 먼 예우차원이었다.
다만 최종건 회장의 3남인 최창원 부사장이 SK그룹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으로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 SK 본사 전경. 지난 17일 이곳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은 정확하게 ‘목표물’을 향해 돌진했다 고 한다. | ||
하지만 최근 SK그룹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최종건가 대표선수’인 최창원 부사장의 신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겨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지난 2월 초 최 부사장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국적 경영’을 한다는 게 공식화된 것.
이에 대해 SK쪽에선 최 부사장이 미국과 한국을 한 달씩 오간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실상 미국 현지법인(SK USA)으로 발령이 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회장급 임원도 아닌 최 부사장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국을 오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종건가 대표선수’가 내수 위주 기업인 SK에서 미국 현지법인에 근무한다는 것은 그룹 수뇌부에서 빠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즉 SK그룹 오너 일가의 이상기류로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물론 SK쪽에선 이런 시각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선우회라는 사촌간 모임을 가질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최태원 회장을 오너 대표로 내세운 것도 가족간의 합의였다는 것.
이 사건의 돌출과정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은 SK 오너와 SK의 전현직 임원간의 갈등설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SK의 현직 경영진들이다.
주목을 끄는 부분은 2002년 2월 유승렬 SK(주) 전 사장이 전격 사임한 부분.
당시 유 사장은 2000년 12월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에서 SK 사장으로 임명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태. SK의 구조조정본부장, SK 사장을 차례로 지내며 SK 핵심 전문경영진으로 승승장구하던 유 전 사장이 1년여 만에 돌연 사표를 내자 재계에선 그의 사임 이유를 두고 뒷말이 나돌았었다. 당시 유 전 사장은 “벤처경영을 하고 싶다”며 사임이유를 댔을 뿐 다른 설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었다.
그의 후임으론 그의 뒤를 이어 SK구조조정본부장을 역임한 김창근 사장이 SK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번 검찰 수사에서 내부거래로 지목된 워커힐과 SK간의 주식거래는 3월26일 일어났다.
당연히 당시 SK 회장인 최태원 회장과 김창근 사장은 이번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유 전 사장은 빠졌다. 유 전 사장은 워커힐과 SK의 내부거래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수사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유 전 사장과 최 전 회장의 명암이 엇갈리자 유 전 사장을 주목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누구의 제보였는지는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 한 비밀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제보자를 밝힐 리도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돌출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인 역학관계이다. 대선 전후 재계에선 SK가 아무개후보를 강력하게 후원했다는 얘기가 흘러 다녔다.
물론 SK쪽에선 정치권에 줄을 선적이 없다고 강력부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사들도 “이번 재계 수사는 참여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에 검찰에서 압수해간 SK그룹의 기밀서류에는 비자금 장부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SK그룹 내부의 부당내부거래로 시작한 검찰의 수사가 다른 방향으로 틀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검찰은 SK 본사의 압수수색에 이어 지난 19일 SK글로벌의 문서보관소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SK가 정관계 인사들과 비밀스런 거래를 한 내역’이 적힌 장부와 비밀금고에 보관된 거액의 현금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내역에 등장하는 정관계 인사들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이번 대선 후원자금까지 포함된 것인지, 최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씨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6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지 여부는 이제 ‘SK 오너만의 비밀’에서 검찰이 알고 현 정부가 알아버린 상황으로까지 번져버렸다.
결과적으로 SK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SK 내부거래에서 출발해, 정관계와의 은밀한 거래내역까지 사직당국에 압수당해 유공(현 SK)이나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인수 내막까지 모두 재조명될 국면까지 판이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