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다음날인 지난 13일, 이 부회장은 디바이스솔루션(DS) 및 디스플레이 부문 경영진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DS 부문장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진교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장(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참석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이 부회장의 발언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규제 대상인 품목 문제뿐 아니라 TV, 스마트폰 등의 제품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이 부회장은 조만간 모바일(IM) 부문과 소비자가전(CE) 부문 경영진과 회의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삼성전자는 크게 DS, IM, CE, 세 부문으로 나뉜다. DS 부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등을 생산·판매하고, IM 부문은 스마트폰을 담당한다. CE 부문은 TV, 냉장고, 세탁기 등 일반적인 가정에서 쓰이는 가전제품을 맡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DS 부문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119조 원의 매출을 거뒀고, IM 부문도 101조 원의 매출을 거둬 선방했다. CE 부문의 매출은 42조 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 DS 부문 ‘업계 불황에 일본 수출 규제까지…’
그런데 올해 들어 삼성전자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1분기 28조 원의 매출을 거뒀던 삼성전자 DS 부문은 올해 1분기 21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을 어느 정도 예견했었다. 지난 1월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수요의 감소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일부 구매자들의 가격 하락 기대감을 키웠고, 연말·연초의 계절적 수요 비수기 동안에 구매자들의 재고 축적 지연으로 이어지며 예상보다 큰 폭의 수요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 이동한 시장의 특성상 수요처들의 요구에 의한 가격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증권가에서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특히 이번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첨단 극자외선(EUV) 라인의 생산 확대를 발표했다. 문제는 수출 규제에 포함된 제품 ‘포토레지스트’가 EUV 핵심 소재라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을 어느 정도 예견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증권가에서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사진=박정훈 기자
삼성전자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적지 않게 긴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라고 해서 중국 후발주자들이 쫓아오고 있기에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EUV 관련 기술 개발 속도가 늦어지면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박유악 연구원도 “삼성전자는 하반기부터 EUV의 양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해당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를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일본의 수출 제한이 발생할 경우 고객 확대를 목전에 둔 삼성 파운드리 부문 영업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일본의 발표 직후 일부에서는 우회 수입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JSR 사의 독점 품목이지만 (JSR의) 벨기에 법인에서 양산 중이기에 이번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JSR 벨기에 법인을 통해 포토레지스트를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현지 언론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지난 10일 “JSR 벨기에 법인이 한국 고객에게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해당 기술이 일본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우회 수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용 소재의 유통 단계에서 최종 종착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규제 품목의 긴급 물량을 확보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긴급 물량일 뿐,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 IM 부문 ‘갤럭시S10의 부진, 갤럭시노트10으로 만회할 수 있을까’
IM 부문의 매출 역시 지난해 1분기 28조 원에서 올해 1분기 27조 원으로 줄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2018년 14억 4000만 대에서 2019년 13억 9000만 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S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화웨이가 애플을 누르고 판매량 2위에 올라섰다. 삼성전자가 판매량 1위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조만간 화웨이에게 1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IM 부문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28조 원에서 올해 1분기 27조 원으로 줄었다. 사진=고성준 기자
게다가 올해 3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10’도 큰 재미를 못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갤럭시S10이 올해 1분기 1150만 대, 2분기 950만 대 판매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재윤 연구원은 “올해 2분기 IM 부문 영업이익은 1조 9000억 원으로 기존 추정치인 2조 5000억 원을 크게 하회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갤럭시A 시리즈 판매는 예상을 상회한 반면 갤럭시S 시리즈 판매가 예상을 하회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갤럭시A 시리즈는 소위 말하는 ‘중저가폰’이기에 갤럭시S 시리즈에 비하면 벌어들이는 이익이 적은 편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갤럭시노트10’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미 오는 8월 7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바클레이스센터에서 갤럭시노트10 공개 행사가 예정돼 있다. 갤럭시노트10는 국내에서 5G 폰으로만 출시되고, 해외에서는 5G와 LTE가 함께 판매될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애플과 화웨이가 5G 스마트폰 출시 계획이 없는 만큼 삼성전자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 CE 부문 ‘새 비전 발표했지만 일본발 악재 우려’
삼성전자 CE 부문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9조 7417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0조 409억 원으로 늘었다. DS 부문과 IM 부문에 비하면 CE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매출이 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사업의 새 비전인 ‘프로젝트 프리즘’을 발표했다. 단조로운 백색 광선을 갖가지 색상으로 투영해 내는 프리즘처럼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반영된 ‘맞춤형 가전’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프로젝트 프리즘의 첫 신제품인 ‘비스포크 냉장고’를 공개했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고객이 원하는 소재와 색상의 도어 패널을 선택하거나 추후 교체할 수 있어 언제든 나만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CE 부문이 디자인에 힘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CE 부문장은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대에 나만의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 프로젝트 프리즘이고, 삼성이 각양각색의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프리즘 같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가 CE 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오는 24일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을 개정해 한국을 수출 규제 예외 국가인 일명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1112개 품목이 수출 규제 적용을 받는다.
삼성전자 CE 부문과 IM 부문은 최근 협력사에게 공문을 보내 일본산 소재와 부품 재고를 최대 90일치 가량 확보해달라고 요청했다. 확보 시한은 8월 15일. 물량 소진과 대금 지급 등은 삼성전자가 책임지겠다는 조건까지 제시했다. 삼성전자로서는 그만큼 부품 확보가 시급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매출(잠정) 108조 3900억 원, 영업이익(잠정) 12조 73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 119조 500억 원, 영업이익 30조 5100억 원에 비하면 각각 8.95%, 58.28% 하락한 수치다. 업계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은 가운데 일본 수출 규제라는 악재까지 만난 삼성전자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