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7시께, 밀양의 한 주택 헛간에서 태어난 지 2~3일쯤 된 신생아가 발견됐다. 탯줄조차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온몸에는 벌레와 모기에 물린 자국과 각종 오물이 가득했다. 신생아를 발견한 건 마을 할머니들. 곧바로 아기를 씻긴 뒤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한 결과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목격자 등을 통해 사건 발생일을 10일 오전에서 11일 오전 7시 사이로 좁혔다. 그러나 마을을 드나드는 출입구의 CCTV에서는 산모로 의심할 만한 인물을 특정하지 못했다. 40대 여성 A 씨를 만난 건 마을을 탐문하는 과정에서다. 경찰은 앞서 사건과 관련해 A 씨를 조사했는데, 신생아가 버려진 현장에 용의자가 두고 간 가방과 비슷한 가방을 들고 다녔다는 한 경찰의 말을 토대로 A 씨를 찾아간 상황이었다.
의외로 A 씨는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갖게 되었는지부터, 이후 복대 등으로 숨겨오다 헛간에서 아이를 낳게 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잘못했다. 반성한다”고 울먹였다.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A 씨와 신생아, 현장에서 발견된 태반 등의 유전자 검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A 씨는 버려진 아기의 친모가 아니었다. 경찰이 지난 18일 신생아 유기 혐의로 검거한 A 씨와 신생아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친자 확인 감정을 의뢰한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온 것이다.
신생아 유기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 사진=경남지방경찰청 제공
A 씨는 경찰이 DNA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추궁하자 “10대 딸이 복대를 하고 있어 혹시 딸의 아이인가 싶어 숨겨주려고 (내가) 대신 임신해 출산한 것처럼 꾸몄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A 씨의 이 진술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A 씨의 두 딸에 대한 DNA 조사 결과 아이와 일치하지 않았다.
곧바로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 조사 과정과 결과 등을 종합하면, A 씨는 최근 출산한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감식과 유류물 수사 등도 소홀하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가 A 씨의 자백에만 치중돼 범행 당일 A 씨의 동선 및 출산 후 건강상태에 대한 조사는 물론, DNA 검사 의뢰를 제외하고 추가적인 증거 확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돌렸다. 당초 일선 경찰서에서 진행하던 조사를 지방청 차원으로 확대해 분석가들을 대거 투입하고, 범행이 발생한 마을에 대한 전수 조사와 함께 마을 진출입로와 주변 사설 CCTV 등을 분석하는 등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 A 씨가 신생아의 친모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범행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A 씨와 주변인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26일, 경찰은 버려진 신생아의 ‘진짜 친모’를 전날 붙잡아 영아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아기가 발견된 지 보름만이다.
경찰은 신생아가 유기된 마을 입구 및 사설 폐쇄회로(CC)TV 분석과 시내 3곳의 산부인과 등에 대한 탐문수사를 통해 40대 여성 B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경찰이 신생아 유기시점으로 파악했던 11일 보다 이틀 전인 9일 오후 6시,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아기를 데리고 하룻밤을 잔 B 씨는 다음날 남편에게 “자신의 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겨 달라고 했다”며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범행 현장으로 향했다. 평소B 씨가 직장 일을 하면서 알고 있던 한 노인의 집 헛간이었다. 유기 장소까지 이동할 때에는 B 씨의 남편이 차량으로 태워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 씨는 출산 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방문했고, 이 사건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범행을 의심한 병원 측이 제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몸이 좋지 않은 데다 여러 사정상 아기를 양육할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아기를 발견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서 키워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유기 이후 뉴스를 보고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는 말도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B 씨를 검거한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DNA) 감식을 긴급 의뢰했다. 이날 오후 친모가 맞다는 회신을 받았다. B 씨에게서도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다.
한편 경찰은 앞서 불구속 입건한 ‘가짜 엄마’ A 씨는 혐의 없음 의견으로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아기는 창원의 한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다. 현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지내고 있다. 친부모가 확인 되지 않아 출생신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상태라 시설에서는 애칭을 정해 부르며 돌보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