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로통신 | ||
이 싸움에서 결국 신 전 회장이 주총 당일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사태는 수습됐다. 하지만 이 싸움은 독자경영을 고집해온 하나로통신의 입장에선 LG에 대한 경계의식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됐다. 때문에 신 전 회장의 후임 자리를 놓고도 LG와 하나로통신은 정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 23일 하나로통신 노조가 자사의 최고경영인 선임에 LG측이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측은 “하나로통신의 지분율 13.02%만 보유하고 있는 LG가 하나로통신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측은 성명에서 “LG그룹이 박운서 데이콤 회장을 앞세워 통신시장에서 연속된 실패(LG텔레콤, 데이콤, 파워콤)를 하나로통신의 경영권 장악으로 만회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조측은 이 주장의 근거로 “박운서 회장이 하나로통신 경영권 장악 및 구조조정, 파워콤 이전, 하나로통신의 시외·국제전화 사업참여 불가방침 등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하나로통신측이 성명서까지 발표하면서 LG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지난 20일 박운서 회장이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박 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하나로통신 최고경영자 선임에 LG가 주도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회장은 “하나로통신의 CEO 선임과 관련해 각계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LG가 주도적으로 신임 경영자 선임을 할 것”임을 밝혔다. 또 그는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의 협력방안을 모색중”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박 회장의 발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하나로통신의 시내전화와 데이콤의 시외 및 국제전화를 통합하고, 양사의 통신시설도 통합운영하며, 하나로통신 자가통신망을 파워콤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
특히 하나로통신 자가통신망을 파워콤에 매각하겠다는 부분은 데이콤-파워콤-하나로통신 3사의 사업을 통합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통신업계 전체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하나로통신의 시내 전화와 데이콤의 시외·국제전화를 패키지화하려는 저의는 하나로통신을 죽여 수익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데이콤을 살리겠다는 뜻이라며 비난했다.
이런 하나로통신의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박 회장이 “통신업계의 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정부 개입을 촉구한 부분이었다. 이는 LG를 중심으로 한 후발 통신사업자들의 새판짜기를 정부에서 나서 적극 추진할 것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사실 LG가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선 것도 근거는 없지 않다.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업체 중 최근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하나로통신 역시 파워콤 인수실패와 외자 유치 무산으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LG그룹 계열인 LG텔레콤(무선)-데이콤(유선 시외·국제 전화)-파워콤(광통신망) 등 후발 통신업자 트리오도 시장 경쟁력은 크게 떨어져 있다. 재계에선 LG가 통신사업에 뛰어든 뒤 3조원을 투자했지만 2조원을 날렸다는 게 정설이다.
때문에 LG그룹의 통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 회장으로선 데이콤-파워콤-하나로를 엮는 사업모델을 통해 데이콤과 파워콤의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방안이 절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LG가 하나로통신에 대해 추가투자 없이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나로통신의 다른 주주들이 동의할지 여부. LG가 비록 1대주주이긴 하지만 삼성, SK 역시 2∼3대 대주주이다. 실제로 삼성전자(8.34%)와 SK텔레콤(5.41%)의 지분을 합치면 LG그룹이 보유한 지분을 웃돈다.
때문에 LG가 제시한 하나로통신 구조조정 방안이 ‘LG의 통신사업 수익성 재고를 위한 방안’일 경우 삼성과 SK에서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결국 LG의 시도는 하나로통신, 삼성, SK의 연합군에 의해 저지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
물론 이 문제는 LG가 하나로통신의 지분을 더 늘리면 된다. 하지만 이미 통신사업에 2조원 넘게 날린 LG로선 하나로통신에 돈을 더 쏟아부을 여력도 없어 보인다.
하나로통신측도 “만년 꼴찌와 부실로 얼룩진 LG의 통신사업을 위해 하나로통신을 제물로 바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은 “LG가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가져가고 싶다면 최소 30% 이상의 지분 매입과 추가적인 투자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친 LG계 인사를 하나로통신의 CEO에 앉힌 뒤 LG의 통신사업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LG측의 시도가 성공하기 까지는 상당한 마찰이 뒤따를 전망이다.
게다가 삼성이나 SK 역시 하나로에 대한 더 이상의 추가투자는 없지만 LG의 경영권 장악은 반대할 것이 확실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박 회장의 ‘하나로와의 사업협력’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LG측은 ‘내용이 와전됐다’며 적극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데이콤은 하나로통신의 시외전화 사업진출에 반대할 것임을 분명히 하는 등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당시 주총에서 삼성은 하나로통신의 시외전화 사업진출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SK는 기권을 했다. LG가 하나로통신의 시외전화 진출을 막으려면 SK를 끌어들여야 하지만, SK는 여전히 모호한 태도.
LG가 삼성과 SK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로통신을 장악하려면 삼성이나 SK의 지분을 매입하면 되나 현재의 12%에서 30%로 지분을 높이려면 줄잡아 2천5백억∼3천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LG는 그럴 만한 자금여력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결국 하나로통신의 차기 CEO 선임문제는 LG와 하나로통신의 전면전 속에, 삼성과 SK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통신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