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청 범정팀이 신촌 M호텔 부근에 사무실을 낸 것으로 확인됐으나, 경찰 관계자들은 범정팀 존재 자체를 부인하 고 있다. 사진은 경찰청. | ||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범정팀은 올해 4월16일 신촌 M호텔 근처 한 빌딩에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팀장 김아무개 경감을 비롯해 5명 내외의 멤버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앞으로 확대 개편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정보분야 경력이 탄탄한 전문 정보맨들이다. 대부분 경찰청 산하 옛 ‘한남동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남동팀은 사직동팀 해체 후 경찰에서 경제 관련 정보 입수를 목적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경찰이 범정팀을 구성한 것은 내부적으로 경찰의 위상강화를 위한 특별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경찰이 정치와 선거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경찰청 정보국의 일부 부서를 폐지키로 결정함에 따라 경찰의 정보 기능은 다소 축소된 상태다.
경찰청 정보국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정치를 담당하던 정보2과가 정치적 오해의 대상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국내정치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까지 말씀하셨다. 그 결과 이번 직제개편에서 기존의 2과 조직을 완전히 해체했다. 그 대신 정보분석을 담당하던 정보 5과의 인력이 그대로 2과로 이동해 와 정보 수집이 아니라 분석과 정책 업무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국 직제개편 결과 막대한 양의 국내정치 고급정보를 수집하던 정보 2과 조직이 해체되고 대신 치안정보와 정책 분석에 주력하게 됨으로써 경찰의 기존 정보 기능이 약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경찰청장의 중요한 ‘안테나’인 정보국의 핵심기능이 위축된 셈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경찰의 기존 정보수집 기능이 직제개편으로 약화되자 범정팀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 A씨는 범정팀 구성 배경에 대해 “그동안 경찰 내부에서는 대외적으로 독립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찰청 고유의 사정팀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면서 “특히 최근 경찰의 자체 정보 수집 기능이 위축될 조짐이 보이면서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 팀의 성격은 청장 직속 사정기관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찰은 수사권 독립문제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독립된 위상강화가 필수적이다. 그 결과 자체 범죄정보수집팀을 가동해 고위층 비리를 수집한다면 그 위상이 최고 사정기관인 검찰의 권위만큼 커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의 A씨는 이에 대해 “범정팀을 만든 배경에는 고위층 비리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를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 정치권에 경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일종의 ‘보험’ 성격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범정팀의 정보가 경찰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든든한 ‘언덕’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범정팀의 존재가 경찰 위상 강화의 ‘무기’로 쓰여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범정팀의 성격이 치안유지를 위해서 범죄정보를 수집한다는 설립 배경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앞서의 A씨는 “범정팀이 수집한 정치 관련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정치권과 ‘물밑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 엄중하게 처리되어야 할 고위층 비리 정보가 자칫 경찰의 위상 강화를 위한 도구로 전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범정팀은 검찰 등 기존 사정기관과 그 역할이 중복돼 인력과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기존의 청와대 특별감찰반과 검찰 국정원 등이 사정활동을 펴고 있는데 여기에 경찰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그것. 검찰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조직이 만들어져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사정기관들이 ‘경찰청장 직속의 별도 사정팀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이의를 제기해 말썽을 빚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범정팀의 막강한 정보력을 앞세워 자칫 경찰 일각에서 고위층의 비리를 덮거나 이를 이용해 흥정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범정팀 구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경찰 관계자 B씨는 이와 관련해 “경찰 범죄정보수집팀이 창설된다면 막강한 정보가 한 곳에 몰릴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팀원을 포함해 정보 계선상에 있는 인사들이 쉽게 비리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팀 내부에서조차도 만약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편 경찰청은 범정팀 존재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보국 한 관계자는 “정보국 직제개편은 완료된 상태이지만 아직 법이 개정 안 된 상태다. 조직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최근 범죄정보수집팀을 만들려고 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정식으로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다만 범정팀 설치 문제가 거론된 것은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범정팀과 관계가 있는 또 다른 관계자는 범정팀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정보국 직제개편은 마무리됐다. 범죄정보수집팀이라는 조직은 없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대신 사이버팀이라는 것이 최근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현실 공간보다 사이버상에서의 정보 수집 강화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아마 이 사이버팀을 운영한다는 것이 와전된 것 같다.”
또한 이 관계자는 신촌에 있는 범정팀 사무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지만 그 기능에 대해선 “외부에서 정보분석만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곳은 외근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이다. 정책 관련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든 곳이고 과거의 분실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범죄정보 분석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 많기 때문에 앉아서 올라오는 대로 정보분석하기보다 실제로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외근팀이 필요하다.”
이 관계자는 또한 “경찰 업무 자체가 비리 사정 첩보가 있으면 당연히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별도의 기구를 두고 고위층 비리를 수사하는 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가 부인하는 범죄정보수집팀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가 신촌의 범정팀 사무실에 전화를 걸자 범정팀 관계자는 “지난 4월16일 사무실을 오픈했다. 신촌 M호텔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데 찾아오려면 관계자와 먼저 통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기자가 사무실 관계자에게 “그곳이 범죄정보수집팀 사무실이냐”고 묻자 또렷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다.
경찰이 치안유지를 위해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범정팀’이 정보분석 외에 도대체 어떤 일을 하기에 경찰이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극구 부인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