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배씨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회계사인 데다가, 그의 나이도 30대 초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이 더욱 커진 이유는 그가 남긴 유서 때문이었다. 배씨의 유서는 그가 집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에서 발견됐다.
그는 A4 용지 4쪽 분량의 유서에서 “회계감사를 맡았던 D사의 일방적 주장을 듣고 회계처리를 한 것이 실수”였다며 “물의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내용을 밝힌 것.
이는 그가 회계사로서 ‘실수’를 했다는 점을 밝혀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D사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듯이 D사가 고의로 회계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더욱이 그가 지목한 D사가 ‘벤처 업계의 1세대’이자 탤런트 김희애씨의 남편으로 유명한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이 세운 ‘드림위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공인회계사협회(회계사협회)가 드림위즈의 회계를 담당한 삼일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에 대해 감리를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계사협회는 정기적으로 여러 회계법인들에 대해 자체적인 감리를 실시한다고 한다.
감리를 실시하는 목적은 각종 기업 회계를 감사하고, 회계사들의 수준을 높인다는 것.
회계사협회가 감리를 하는 과정에서 만약 회계사나 회계법인들이 고의나 실수 등 잘못을 저지른 것이 발각될 경우에는 사안의 영향력에 따라 경고 등의 조치를 받게 된다고 한다.
A회계법인의 한 회계사에 따르면 “회계사협회의 감리는 엄밀히 말해 제재조치를 가하는 일이라기보다는 회계사들 사이에서는 ‘귀찮은 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이는 회계사협회측에 제출해야할 서류도 많고, 일일이 회계사협회의 감리위원회 등에 불려 다녀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회계법인들간에 비교가 되는 일이어서 회사측에서는 무척 신중을 기하는 일로 알려져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회계사에 따르면 이전 파트너였던 한 이사는 입버릇처럼 “삼일 이름 달고 회계를 잘못하면 차라리 할복해라”는 살벌한 언어를 종종 쓸 정도였다는 것.
회계사들의 부담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드림위즈에 대해 회계감사를 마친 삼일회계법인에 대한 회계사협회의 감리 역시 처음에는 이런 수준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아무개 회계사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16일 드림위즈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측 일부 인사와 회계사협회 감리위원회측은 면담을 했었고, 감리위원회는 몇 가지 회계 감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감리위원회가 삼일회계법인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회계사의 경고조치 수위 및 드림위즈측의 분식회계 의혹 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회계사협회측은 이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역시 “별다른 중요한 요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즉 회계사협회측에서 지적한 내용은 회계에 있어 감가상각처리 등과 관련된 미미한 수준의 기술적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K회계법인 회계사는 “미미한 실수 때문에 회계사가 자살을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는 드림위즈의 분식회계 등과 같은 중대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될 경우, 드림위즈측이나 이 회사에 대한 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 역시 단순한 ‘실수’로만 해명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코스닥 벤처 기업에 대한 회계가 재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대기업 등과 다르게 급작스럽게 탄생한 벤처기업에 대해 적용되는 회계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A회계법인 회계사는 “벤처회사의 회계가 모호한 구석이 많아 그동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며 “개발비, 광고매출, 대손충당금 처리 등은 특히 회계사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개발비의 경우 인터넷 업체들은 이 항목에 대해 향후 순익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회계사들은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또 인터넷 광고는 회계 규정 자체가 마련돼 있지도 않다.
결국 이 같은 벤처기업에 대한 회계 기준의 모호성이 젊은 회계사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다.
특히 벤처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는 산업의 특성상 접근하기가 어려워 제법 큰 회계법인에서도 엄두를 못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인터넷 벤처기업인 다음, NHN, 네오위즈 등과 대표적 게임 업체인 엔씨소프트, 웹젠 등의 회계 감사를 모두 삼일회계법인에서 도맡아 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회계사협회측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자체감리를 하고 있으며, 향후 감리의 결과에 따라 금감원의 회계총괄팀에서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