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소렐 회장 | ||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다 최근 독립해 광고대행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아무개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올해를 기점으로 이제 광고업계가 본격 재편될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광고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말 국내 2위 광고업체인 LG애드가 WPP그룹에 넘어간 데 이어, 최근 업계 3위인 금강기획마저 이 그룹으로 인수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WPP는 국내 2, 3위 브랜드인 LG애드와 금강기획을 손에 넣어 국내 시장에서 보다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됐다.
그러나 이는 국내 광고업계에서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다국적 기업의 공세로 인해 국내 중소 광고회사들이 소용돌이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금강기획 관계자는 “오는 8월1일자로 다국적 광고회사인 WPP그룹에 편입됐다”고 밝혔다. 금강기획측이 ‘편입’이라고 밝힌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일은 WPP와 금강기획간에 이뤄진 딜은 아니었다.
금강기획은 지난 99년 외국계 광고회사인 CCG그룹에 현대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80%를 넘겼다. 이후 CCG그룹이 경영난을 겪게 되면서 또다른 미디어 그룹인 WWP사가 이번에 CCG그룹을 통째로 사들임에 따라 이 그룹에 속해 있던 금강기획도 자연스럽게 WWP그룹에 통합되게 된 것.
이로써 국내 업계 2위와 3위에 랭크된 LG애드와 금강기획은 각각 대주주가 LG와 현대라는 재벌기업에서 WPP라는 외국기업으로 바뀌게 됐다.
국내 광고업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WPP는 대체 어떤 회사인가. WPP는 사실상 광고회사라기보다는 광고그룹 계열사들을 거느린 지주회사격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커뮤니케이션 그룹.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모든 일들이 미국의 뉴욕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전세계 1백3개 국에 총 1천4백여 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그룹 직원만 6만4천여 명 정도.
이 회사가 광고나 커뮤니케이션 등을 위해 취급하는 돈은 1년에 약 98조4천억원으로 매머드급이다. 이중에서 총 수입액이 약 10조6천억원 정도. 지난해 국내 광고시장의 전체 규모가 6조4천7백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회사의 대략적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룹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스타급 CEO인 마틴 소렐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광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소렐 회장은 ‘광고업계의 전설’로 불린다고 한다.
지난 86년 회사가 설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소렐 회장의 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소렐 회장은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영국의 위상을 높였고 이를 인정받아, 지난 2000년에 밀레니엄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회장보다는 ‘경’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렐 회장은 지난 84년까지 미국의 대형 광고회사인 ‘사치 앤 사치’에서 재무를 담당하며, 경험을 쌓은 뒤 당시 제조회사였던 WPP사를 인수해 그룹을 일궈냈다. 북미 및 유럽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던 소렐 회장이 아시아 지역에 눈을 돌린 것은 지난 2000년부터.
현재 국내만 하더라도 LG애드, 금강기획 외에 O&M(오길비 앤 매더), 덴쯔영&루비컴, JWT/어드벤처 등의 광고회사의 주인이 모두 WPP사다.
실제로 소렐 회장은 지난해 12월 LG애드 지분을 인수하면서 국내에 직접 들렀을 정도로 국내 시장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렐 회장의 오른팔 역할은 아시아태평양 총책임자인 마일즈 영 회장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일즈 영 회장은 금강기획이 WPP그룹으로 편입된 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주 주말에 곧장 서울로 날아와 금강기획을 방문, 점심시간에 임직원들과 금강기획의 비전 및 운영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을 정도다.
금강기획 관계자는 “맨처음에는 돌연 주인이 WPP그룹으로 바뀌어 직원들이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각종 비전들을 제시해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WPP가 국내 시장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나서자, 이에 속하지 않은 다른 광고회사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는 WPP의 국내 계열사인 LG애드, 금강기획, O&M 등이 만약 합쳐질 경우 그 위력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소 광고업체 한 관계자는 “광고시장 경기가 무척 위축된 상황에서 WPP가 자금력 등을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설 경우 시장 자체가 재편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