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2일 ‘고영구 청문회’에 참석한 박상천(왼쪽) 정균환 의원. 김옥두 의원도 정보위 소속이다. | ||
강경파들에 의해 ‘신당 배제 대상 1순위’로 꼽히는 그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던 일부 동교동계와 후단협, 탈당파 인사들이다. 지역구도에 의존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온 비개혁적 인사들도 배제 대상인데 여기에는 주로 호남 중진들이 포함된다. 최근 각종 비리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거나 향후 정치권 사정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나라종금사건, 이윤수 의원이 연루된 삼호건설사건, 손세일 전 의원이 구속된 석탄 납품비리 사건, 월드컵 휘장사업 비리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들은 당연히 이 부류에 포함된다. 김대중 정부 아래서 실세로 평가받아 향후 정치권 사정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도 함께 거명되고 있다.
강경파의 한 의원은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이미 정치권 사정 대상에 올랐거나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을 신당에 참여시키면 신당은 출범하자마자 침몰할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방침을 사실상 시인했다.
결국 신당이 어떤 명분과 방향을 취하더라도 강경파들이 주도권을 잡는 한 동교동계나 호남 중진, 후단협에 속하는 상당수 인사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당호’에 동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강경파들은 4·24재보선 직후 ‘신당 창당’을 선언할 때부터 당을 탈당, 범개혁세력과 연대해 신당을 창당할 방침이었다. 당 개혁안 처리 과정에서 구주류측이 보여준 행태를 감안하면 더 이상 민주당 내에서 개혁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강경파들은 자신들의 신당창당론이 구주류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고 이를 명분 삼아 탈당과 신당창당의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상황은 강경파들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강경파들이 신당론을 제기하자마자 신주류 당권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구주류까지 일제히 신당창당론에 동참하면서 신당론은 불과 일주일 만에 당내 대세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내 제 정파들이 ‘개혁신당론’과 ‘통합신당론’으로 양분되면서 당초 강경파들이 주장한 신당론의 본질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경파의 한 의원은 “처음 신당론이 급속히 확산될 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정치적으로 노회한 구주류측이 원론적 차원에서 신당론에 동조, 강경파의 발을 묶은 뒤 ‘통합신당론’이란 명분으로 강경파 신당론이 겨냥한 ‘구주류 물갈이’를 피해가려 한다는 분석이 내부에서 제기됐다”고 말했다.
강경파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4·24재보선 전 진행돼온 민주당 개혁안 처리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대선 후 강경파들이 당의 혁신적 개혁을 주장하고 이 주장이 대세로 자리잡자 구주류측은 즉각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 당 공식기구에서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당 공식기구에서 논의하자’는 거부하기 힘든 명분에 밀린 강경파는 일단 개혁안 논의에 참여했지만 이때부터 구주류의 조직적이고 집요한 반격이 시작됐다. 강경파들은 ‘지구당위원장직 폐지’와 ‘임시지도부 구성’을 당 개혁의 핵심으로 주장했으나 구주류측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야당이 가만히 있는데 총선을 앞두고 지구당위원장을 폐지하는 것은 총선 참패를 자초하는 것이며 임시지도부 구성 역시 당헌에 어긋난다는 것이 반대 논리였다.
결국 당 개혁안은 변질을 거듭했고 그나마 4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당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사실 강경파가 개혁안의 핵심이라고 주장한 이 두 가지 방안은 ‘구주류 물갈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였는데 이를 간파한 구주류측이 ‘물타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강경파들은 지난 4일부터 본격적인 역공세에 나섰다. 정동영 이해찬 천정배 신기남 이호웅 의원 등 강경파들은 지난 4일 개별 접촉을 갖고 민주당 외곽에서 제 개혁세력과 연대, 신당 추진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더이상 구주류측의 물타기 전술 등에 말려들지 않고 당초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호웅 의원은 4일 모임 직후 “당내에서 신당논의가 더 이상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며 “이달 중으로 당 밖에서 신당 추진 기구가 발족할 것이며 여기에는 한나라당과 각 지역 개혁모임 등의 개혁파가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신당 추진 기구에 참여할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 및 선별작업이 이미 끝났다”며 “참여폭은 미정이나 민주당 의원이 대거 참여할 경우 ‘신장개업’으로 비칠 것이 분명한 만큼 최초 참여 의원 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당창당에서 구주류 등을 배제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셈이다.
‘친노’ 강경파들이 신당 배제 대상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에는 우선 동교동계 핵심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지난 대선 이후부터 최근까지 신주류에 맞서 구주류의 수장 역할을 한 정균환 총무는 영순위다. 김대중 정부하에서 핵심실세 그룹을 형성했던 김옥두 최재승 의원과 한광옥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특히 당사자들의 해명과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 의원의 경우 손세일 전 의원이 구속된 석탄납품 사건에 연루 의혹을 받고 있고 한 전 대표도 나라종금사건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태랑 최고위원, 이훈평 전갑길 조재환 의원 등 동교동계 의원들도 역시 배제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지역 의원 중 대선 직후 인터넷을 달구었던 ‘살생부’에 ‘역적’으로 분류됐던 인사들도 배제 대상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강경파 시각대로라면 ‘역적 중 역적’으로 분류된 박상천 최고위원은 최근 신당 참여 문제에 유보적 입장으로 회귀했지만 ‘구제’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충조 의원이나 장성원 의원 등도 배제 대상에 함께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의원의 경우 최근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후단협의 핵심 인사와 탈당파 의원들은 동교동계 못지 않게 배제 서열이 앞서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용태 김명섭 최명헌 최선영 의원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친노 강경파들은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도도 그리 높지 않아 호남민심과 이들을 효과적으로 분리시킬 경우 이들을 전원 배제시켜도 차기 총선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경파 한 의원에 따르면 최근 호남지역 의원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30% 이하에 머물고 있으며 특히 3선 이상의 의원들에 대한 지지도는 대부분 10%선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배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은 친노 강경파들의 이 같은 주장과 분석을 일축하고 있다. 이들은 정국 흐름상 신당론에 대해 동조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탈레반’들이 주장하는 ‘뺄셈형 신당’은 당내에서 호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세 확산에 실패, 결국 차기 총선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주류의 한 의원은 “만약 강경파들이 구주류 핵심인사들을 배제하고 신당을 창당하려 한다면 당내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탈당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탈레반을 따라 탈당할 인사는 많아야 30여 명에 불과하고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10여 명과 개혁당 2명을 합쳐도 40여 석에 불과해 제3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또 다른 의원은 “호남 출신 인사들 대다수가 민주당에서 잔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신주류가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다면 개혁 성향의 표를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호남표와 전통적 민주당 지지표 절반 이상을 상실할 것”이라며 “특히 총선에서 민주당이 개혁당에 대해 표적 공천을 한다면 한나라당만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구주류측은 신주류측이 ‘개혁신당론’(강경파)과 ‘개혁적 통합신당론’(당권파 및 재야중진그룹)으로 분열하면서 결국 구주류와 중도 관망파의 지지를 받는 ‘개혁적 통합신당론’으로 대세가 모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개혁적 통합신당론’은 과거 전력과 상관없이 정치 개혁과 기득권 포기에 동의하는 인사들은 모두 신당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구주류측은 신주류 강경파들이 오히려 당내 소수파로 몰려 탈당하거나 결국 통합신당론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신들의 신당 진입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