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종금 로비 사건과 관련해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이 12일 검찰 에 소환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당장 이런 저런 비리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 수만 이미 수십 명을 넘어서고 있고 주 대상은 여권 구주류다. 과거 정치권 사정이 ‘야당 압박’이나 ‘야당 의원 빼내기’를 겨냥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의 주체세력들이 구상중인 정계개편의 방향도 여권 구주류의 배제 등을 전제한 개혁신당론으로 초점을 모아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최근 ‘4대 잡초 제거론’을 통해 비리 연루 정치인의 정치권 퇴출 의지를 강조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노무현 직계그룹이 개혁신당 주도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르면 이번주 내 ‘신당추진위’를 발족할 방침이다.
노무현 직계그룹들은 민주당 기득권 포기라는 개혁신당 원칙에 동의할 경우 신·구주류를 막론하고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비리연루 인사나 비리연루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물론 새 정부 들어 청와대나 검찰의 비공식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청와대는 검찰의 정치권 사정에 대해 ‘완전 방임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전 정권 비리 연루 대상자는 자연히 전 정권의 핵심인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청와대측의 ‘방임주의’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굳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아도 사정의 대상자는 동교동계 등을 포함한 민주당 구주류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개입’이 오히려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주 초부터 정치권 사정의 새로운 초점으로 부각한 사건은 월드컵 휘장사업 비리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초 휘장사업권을 따낸 CPP코리아측이 2000년 4·13총선을 전후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는 데 맞춰졌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1년 12월 월드컵 휘장사업권자가 CPP코리아에서 코오롱TNS월드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CPP코리아와 코오롱TNS월드측이 각각 정치권을 상대로 무차별 로비를 벌인 혐의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CPP코리아측은 휘장 사업권 유지와 사업편의 제공을 위해 당시 민주당 중진이었던 L의원측에 2억원, 한나라당 P, N의원에게 각각 8천만원과 2천만원, 자민련 중진 L 전 의원에게 수천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맞서 코오롱TNS월드측도 대대적인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코오롱TNS월드의 임원이 작성한 2001년 사업권자 변경 당시의 ‘업무메모’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메모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 C씨 등 비서관급 간부 2명의 이름이 언급돼 있으며 민주당 출신의 정부투자기관장, 월드컵 조직위 및 한국관광공사 고위 간부 등이 코오롱측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치권 일각에서는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도 몇몇 연루돼 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특히 메모를 작성한 임원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메모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언급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적이어서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여권 핵심 인사들이 대거 사정권에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라종금 사건의 수사도 연일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이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았다. 한 최고위원은 99년 3월 서울 구로을 재선거와 같은 해 11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재직시절 고교 후배이자 나라종금의 대주주였던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한 최고위원을 일단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거물을 공개소환한 것은 이미 혐의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최고위원측은 물론 금품수수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정치권에서는 수억원에서 십수억원대의 금품수수설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특히 한 최고위원이 99년 재선거 출마 당시에는 당 내외로부터 선거자금을 지원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상당액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 각종 비리사건에 정치인 수십 명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여의도는 지금 초긴장 상태다. | ||
그러나 나라종금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일체의 정치적 행보를 중단하고 사건 관련 해명자료만을 배포해왔다.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주류의 핵심인사 한 명의 발목이 완전히 묶인 셈이다.
신당 창당과 관련, 민주당 내 중도그룹 모임인 ‘개혁과 통합을 위한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박주선 의원도 나라종금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박 의원은 전남 보성 선배인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선거자금 지원 등의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총선 출마 직전 석방돼 금전문제에 연루될 경우 영원히 재기가 어렵다고 주변에서 충고해 직접 돈을 만진 적이 없다”며 “특히 당시 나에게 누가 로비를 하겠느냐”고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실제로 박 의원의 경우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안상태 전 사장이 박의원 선거캠프에 선거비용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박 의원은 선거자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으며 선거자금법 위반 공소시효까지 이미 만료된 상태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서는 박 의원이 안 전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합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쳤지만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박 의원이 자신의 주장대로 사법처리를 면하더라도 일단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에는 민주당 내 중도그룹의 대표주자로서 활동 반경은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고 같은 그룹 내 인사들도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나라종금 사건의 파장은 한 최고위원과 박 의원 선에서 머무르지 않을 조짐이다. 이미 여야 의원 몇 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검찰도 정치인 3~4명은 추가 소환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호준 전 회장의 경우 주식투자를 통해 3백억원대의 수익을 거둬 이 중 1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운용하며 나라종금 퇴출 저지를 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1백억원대라면 1인당 5억원씩을 제공해도 20명이 대상에 오르는 셈이다.
또 검찰은 안상태 전 사장이 99년 8월24일부터 2000년 4월25일까지 수 차례에 걸쳐 `‘공로금’ 명목으로 받은 25억원으로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구입한 사실로 미뤄 대대적인 정치권 로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는 현금과 마찬가지로 자금 추적의 어려움이 있어 뇌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안 전 사장이 김 전 회장에게서 마지막으로 공로금을 전달받은 시점이 4·13총선 전후라는 점에서 로비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삼호건설사건, 수도권 및 부산지역 골프장 인허가 비리의혹 사건 등 각종 비리사건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의원들만 1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민주당 노무현 직계그룹은 이미 정치권 사정에 노출된 인사들 외에 구주류 핵심 인사들 중 비리 연루 가능성이 높은 의원들이 상당수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정권 핵심으로 권력을 향유한 동교동계 중진들로 주로 개혁신당에 강력히 반대하는 인사들이다. 지금은 비록 사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늦어도 올해 내에 모두 노출될 것이라는 것.
정치권의 사정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노무현 직계그룹 등 개혁신당 추진파들은 이미 신당 창당 후 일부 지역구에 배치할 인사들에 대한 구상도 어느 정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주류 핵심인 정균환 총무의 전북 고창·부안 지역구엔 노 대통령의 언론특보를 지낸 장세환씨와 노 대통령과 같은 법률사무소에 근무한 임종인 변호사가 거론되고 있다.
역시 구주류 핵심인 박상천 최고위원의 전남 고흥에는 광주 부시장을 지낸 송재구 개혁당 위원장과 송갑석 전 한총련 의장이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정대철 대표의 직계인 민영삼 부대변인, 개혁당 소속으로 전남대 삼민투위원장을 지낸 강기정씨, 운동권 출신의 나병식 풀빛출판사 전 사장이 일부 호남 지역구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 사정이 기획 여부에 상관없이 새정부 주체세력의 구주류 배제 방침과 방향을 같이하면서 역대 정권 중 최대의 피해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래서 힘을 얻고 있고 그 자체가 노무현 직계그룹의 신당 창당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