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자 건설업계는 물론, 호텔업계, 증권가에서까지 현대산업개발이 무슨 이유로 호텔사업에 진출키로 결정했는지를 두고 여러 추측이 오가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회사가 호텔업에 진출하는 문제에 대한 문의에 회사(현대산업개발)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왜 이 사업에 뛰어든 걸까.
지난 연말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노른자위 땅에 국내 최고급 호텔인 ‘파크하얏트서울’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호텔은 기존의 ‘5스타호텔’보다 한 급 높은 ‘6스타호텔’로 지어질 것이라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그 규모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이 호텔은 지하 4층, 지상 24층 높이로, 총 1백85개의 객실과 각종 부대시설이 포함된다. 이 정도 수준이면 하얏트호텔 중에서도 전 세계에서 22곳, 아시아에는 단 5곳밖에 없는 초특급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호텔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면서 무척 놀란 분위기. 그동안 현대산업개발이 호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종종 나돌았지만, 이 정도의 최고급 호텔을 지을 계획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반응들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의 호텔진출설이 처음 업계에 나돈 것은 지난해 9월경이었다. 당시 증권업계에 현대산업개발이 호텔업 진출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금감원은 이에 대한 회사측의 공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아직까지 검토중”이라고 밝혔으나,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뚝 떨어지면서 ‘악재’로 평가됐다. 호텔업에 진출하는 이유가 불분명하고, 사업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이에 대해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신사업에 진출키로 했다고 이유를 밝혔으나, 업계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LG증권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역삼동 스타타워 매각 등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겨우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호텔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호텔업은 특성상 출범 이후 3~5년 동안은 집중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이 그만한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현대산업개발은 막상 호텔진출을 자신있게 선언하고도 아직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룹 내에서도 ‘교통정리’가 안된 느낌이다.
현대산업개발 홍보실 관계자는 “호텔사업에 진출키로 결정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진행 상황에 따라 사업 자체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국내 경기가 워낙 좋지 않은데다 호텔 운영자 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현대산업개발이 호텔을 짓겠다는 대치동 부지 어디에서도 호텔건설과 관련된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현재 땅고르기가 한창인 강남구 대치동 현대산업개발 부지에는 ‘대치동 오피스 건축 현장’이라고 돼 있을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99년 한동안 호텔사업을 하겠다며 야심을 불태웠다가 끝내 중도포기한 적도 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역삼동 아이타워 중 지상 30~45층에는 초특급호텔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이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건설경기 침체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결국 아이타워 자체를 외국계 투자자에게 팔아야 했던 것. 재계 관계자는 “자금난으로 포기했던 사업을 왜 다시 재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호텔사업에 진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중 하나가 정세영 현대산업 명예회장 2세들의 재산분배 수순이라는 해석. 현재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은 정세영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정유경씨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이런 얘기는 현대산업개발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한 내부 관계자는 “지난 1999년에 현대산업개발이 호텔을 짓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 호텔은 정 명예회장의 ‘막내딸 몫’이라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했다”며 “이번에 다시 진출하는 것도 지난번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유경씨는 한동안 현대산업개발에 몸담았던 적이 있다. 유경씨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그후 지난 99년 7월까지 현대산업개발에서 근무했다.
그는 전방그룹 김석성 전 회장의 외아들인 김종엽씨와 결혼한 뒤 회사를 그만뒀지만,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벌가 2, 3세 여성들이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는 것을 보며 회사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는 후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재벌그룹들이 2, 3세들에게 경영 대물림을 하다보니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주주입장에서 보면 오너 일가에 의해 그룹의 사업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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