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에 동원된 수사인력만도 검사 5명에 수사관 60여 명으로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이날 검찰이 압수한 장부는 트럭 2대 분량에 달했다. 검찰은 대우건설이 강원랜드와 트럼프월드 공사와 관련, 하도급 업체 등을 통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상국 전 사장을 긴급체포한 이후 이틀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던 검찰은 당초 구속영장을 청구하리라던 예상을 깨고 남상국 전 사장을 9일 새벽 귀가시켰다. 남상국 전 사장은 대우건설이 워크아웃 상태에 놓여 있던 4년 동안 사장으로 재임했고, 워크아웃 졸업을 불과 1주일 앞둔 지난해 12월24일 사퇴한 바 있다.
▲ 남상국 전 사장(사진)의 비자금 조성과 김우중 전 회장의 복귀문제가 연관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
그가 그토록 많은 비자금을 마련하려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와 관련해 현재 검찰 주변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측이 오가고 있다.
첫째는 남 전 사장의 비자금 조성 목적은 ‘사장 연임’을 위한 로비자금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남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2일 대주주와 채권단 대표로 구성된 ‘경영진 추천위원회’에서 박세흠 당시 전무가 차기 사장으로 추천되기 이전까지 전방위로 ‘연임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우건설 차기 사장 선임 과정에 재계 일각에서는 ‘남 전 사장이 청와대 고위인사,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한국자산관리공사 고위인사 등을 통해 ‘로비’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 주변인물에게도 접근, ‘연임로비’를 시도했으나, 대통령 당선 직후 ‘인사 청탁하는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의 귀에 이 같은 로비 사실이 흘러 들어가 도리어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도 오갔다.
어쨌든 남 전 사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실제로 사장 연임에 실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 전 사장이 검찰에 긴급체포된 이후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이 대우건설로부터 3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추가돼 구속됐다는 점에서 남 전 사장의 연임로비가 어느 정도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둘째는 남 전 사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배경이 김우중 전 회장 복귀문제와 연관됐을 가능성이다.
남 전 사장은 김우중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로 대우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김 전 회장이 측근 명의로 운영해왔던 수십 개의 위장계열사를 관리해왔다는 것.
대우건설 내부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 전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임직원 차명으로 각 지역별로 위장계열사를 설립운영해왔다.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도피한 이후에는 남 전 사장이 위장 계열사를 관리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 전 사장이 대우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 같은 위장계열사 가운데 몇몇 회사는 대우건설 투자회사로 편입시켰으나, 나머지 회사들은 소유권이 임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이와 함께 남상국 전 사장과 김우중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또다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정보시스템의 매각과 삼일빌딩 인수과정에 김우중 전 회장의 자금이 유입됐다는 의혹이 그것. 이 과정에 남상국 전 사장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 89년 4월 대우 계열사의 전산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우정보시스템은 당초 지분이 대우전자(47.5%) 대우중공업(44.4%) 대우통신(7.9%) 등으로 분산돼 있었다가 지난 99년 6월 2백50억원에 홍콩 KMC법인으로 넘어갔다.
그후 대우정보시스템의 유·무상 증자에 모두 참여한 KMC는 2000년 3월 신성이엔지 등 국내기업들과 개인에게 지분의 약 30%를 매입 대금의 3배에 가까운 높은 가격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이후 대우정보시스템은 당시 정권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던 조풍언씨 등을 앞세워 삼일빌딩을 매입했다.
이 과정에 김우중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남상국 전 사장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남 전 사장에게 쏠리는 또다른 의혹은 2002년 대선 직전 ‘김우중 전 회장 귀국’을 추진했다 무산됐다는 의혹이다.
정치권 인사에 의하면 남 전 사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회창 대세론’에 힘입어 이회창 후보 당선을 확신하고 한나라당 L의원과 연계, 대선 이후 김우중 전 회장을 복귀시키기로 약속하고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남 전 사장은 유럽에 머물고 있던 김우중 전 회장을 싱가포르에 대기시켜 놓고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귀국시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선 결과 이회창 후보 패배로 나타나 다시 김 전 회장을 유럽으로 피신시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실명공개를 거부한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남 전 사장과 김 전 회장은 경기고 선후배 사이이긴 하지만 그룹 시절에도 친밀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남 전 사장이 김 전 회장을 위해 대리인역할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