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천안함 희생장병 연설’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대통령의 눈물’은 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왔다. 숨진 장병들의 이름을 메인 목소리로 일일이 호명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추모 정서를 되새길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지도자의 눈물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국가지도자가 흘리는 눈물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 이미지 컨설턴트는 “정치인들은 비단 말로만 대중들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다. 얼굴 표정이나 사소한 몸동작, 눈물까지도 홍보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정치인들이 눈물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과연 정치인들의 눈물은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심리학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눈물의 정치학’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MB 눈물’ 단기 긍정적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단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들은 어떤 인물에 대해 판단할 때 우선 그 대상의 본심을 ‘선하게’ 보려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등의 저서를 쓴 심리학자 김태형 씨는 “대중들은 눈물을 보면 일단 그 점에 끌리기 때문에 눈물의 ‘의도’를 파악하기 이전에 공감을 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의 눈물은 주위 환기의 효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중들이 이성적인 면 이전에 감성적 부분에 대해 먼저 공감한다는 점도 ‘눈물의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 심리학자 김 씨는 “어떤 사람이 웃으면 아무 이유 없이 함께 웃으려는 심리가 있고 이는 눈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감성적 공감 반응이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통령의 눈물이 효과적일 수 있었던 배경은 눈물의 ‘원인’이 된 ‘천안함 사태’와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가져온 중대한 사건이었기에 평소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저 눈물은 진짜겠지’라며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통령의 눈물은 평소 대통령의 단점으로 지적돼온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를 깰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반면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일반 정치인과 달리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눈물은 대중의 심리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자칫 눈물이 나약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대중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추도식장과 같은 자연스러운 장소가 아닌 생방송 연설 도중에서의 눈물은 ‘연출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한다. 청와대 측 설명에 따르면 이날 이 대통령의 눈물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연설에 대해 한 이미지 컨설턴트는 “‘금양호 실종 선원’들을 같이 언급했더라면 긍정적 효과가 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의 눈물’ 되레 역작용
그렇다면 ‘정치인의 눈물’은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2004년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최영재 교수는 이 주제를 가지고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참고논문:<정치인의 눈물과 이미지 형성에 관한 실험연구>). 이 논문에 따르면, ‘정치인의 눈물’은 따뜻한 인상을 주는 데는 효과를 발휘하는 장점이 있으나 약하고 무능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상을 준다는 단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치인이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중요한 정치인으로 인식되는 데에 눈물이 역작용을 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맨 위부터 추미애, 노무현, 손학규 |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파동 이후 ‘삼보일배’를 하며 흘렸던 추미애 민주당 의원의 눈물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추 의원이 처한 정치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눈물은 ‘나약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추 의원은 지난해 7월에는 비정규직 근로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환노위원장 신분으로 기자회견을 열던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의 눈물은 ‘열혈투사’로 비춰지던 추 위원의 이미지를 완화시켰다는 평가다.
추 의원은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자주 보여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한 이미지 컨설턴트는 “추 의원의 이미지에서는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반면 많은 정치역경을 겪어왔기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많이 노출되었다. 추 의원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여성이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또 정치인의 너무 많은 눈물에 대해 대중은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의 눈물’ 가장 인상적
‘정치인의 눈물’ 중 가장 대중들에게 인상 깊게 남아있는 장면은 다름 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6편의 TV 광고 중 ‘눈물 광고’로 큰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눈물은 2002년 대선 기간 ‘감성 정치’를 유행시킬 정도로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낸 바 있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당시 ‘노무현의 눈물’을 통해 대중들은 그가 걸어온 고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슬픔을 느껴 흘린 눈물이 아니라 그동안의 누적된 고통이 터진 눈물의 의미로 해석되었다는 것. 심리학자 김태형 씨는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를 해온 것이 아닌 약자의 위치에서 대선후보까지 올라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물은 대중들에게 복합적인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TV광고를 통해 ‘눈물’을 보이면서 긍정적 효과를 얻은 바 있다. 경제난을 호소하는 할머니를 안고 눈시울을 적시는 이 대통령의 모습에서 대중들은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읽어냈다.
‘손의 눈물’ 승부수 던져
지난 2007년 3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떠나며 흘렸던 눈물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손 전 지사는 당시 한나라당 경선룰에 반발하며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간다’는 발언과 함께 탈당 선언을 했다. 손 전 지사가 당을 박차고 나간 것에 대해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이러한 비판을 희석시킨 것이 바로 그의 눈물이었다는 평가다. 심리학자 김 씨는 “상식적으로 탈당 자체가 이해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눈물의 선언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대중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탈당할 수밖에 없는 속내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리학자 김태형 씨는 논리를 중시하는 ‘사고형’이 많은 미국과 유럽에 비해 ‘감정형’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정치인의 눈물’이 적절하게 활용된다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앞서의 논문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중도와 진보 성향의 유권자에 비해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이 눈물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다음 대선전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눈물 전략’을 택한다면 민주당 후보에 비해 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