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표 최고위원(왼쪽)과 유시민 전 장관을 중재하기 위해 손학규 전 대표(아래)가 나섰다. |
지난 4월 20일 국회 기자회견장. 세 달 가까이 6·2 지방선거 야권연대 협상을 중재해온 시민사회단체 4곳의 협상 대표는 ‘협상 최종 결렬’을 공식 선언하면서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협상 참여 정당들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이 같은 성토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집중됐다. 협상 일원이었던 백승헌 ‘희망과대안’ 공동운영위원장은 “협상 결렬의 구조적 원인이 민주당에 있다면, 최종 결렬된 결정적 책임은 참여당에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들이 거론한 ‘두 가지 쟁점’은 경기지사 후보 경선 방안과 호남지역 기초단체장의 민주당 ‘양보지역’ 선정문제였다. 하지만 “호남지역 양보 건은 민주노동당과 쌍자협의를 통해 사실상 합의를 볼 수 있었다”(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연대 무산의 단초는 결국 경기지사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민주당과 참여당, 또 이들 정당의 경기지사 후보였던 김진표 최고위원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신경전이었다는 게 협상장 주변의 중평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상황은 앞서 4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협상시한이었던 15일 자정을 넘겨 이날 새벽 6시 30분까지 계속된 마라톤협상 끝에 민주·민노·창조한국·참여당 등 야 4당은 사실상의 ‘가합의안’을 만들 수 있었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경기지사 후보 단일화 경선 룰도 ‘여론조사 50%·도민참여경선 50%’로 정리됐다. 경선 룰 협상 권한을 참여당에서 위임 받은 시민사회가 민주당에 이 같은 안을 제안했고 민주당이 수용하면서 물꼬가 터졌던 것이다.
하지만 사단은 이후에 터졌다. 참여당이 전 당원 토론회를 거치면서 “중재안은 유 전 장관에게 독배를 마시라는 것”이라며 시행세칙 일부의 조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 참여당은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가상대결에서 ‘(후보) 적합도’로 여론조사 문항을 변경하고, 선거인단 연령별 할당을 20년 단위가 아닌 10년 단위로 분류할 것을 요구했다. ‘김 지사와의 가상대결시 승리 가능성’을 묻는 여론조사로는 김 최고위원과의 격차를 벌릴 수 없는 데다 조직력 싸움인 도민참여경선에서 현격하게 밀릴 것이라는 판단이 고려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단박에 거절했다. 특히 협상 대표였던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최종 담판에 앞서 갑자기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4·16 가합의문에 대한 완전한 준수를 요구하고, 이를 흔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시간 지연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선을 치를 수 있는 ‘물리적 데드라인’이 이날까지임에도 참여당이 느닷없이 새 요구조건을 들고 나온 것은 사실상 “유 전 장관에게 불리한 경선을 무산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맏형’이란 점 때문에 침묵해왔지만 이날 김 최고위원이 결렬을 예상하고 여론전 승기를 잡기 위해 먼저 치고 나갔던 것”이라며 민주당이 ‘정면 돌파’를 해법으로 선택했음을 알렸다.
이후 격렬한 상호비방전이 전개됐다. 특히, 민주당의 비판은 ‘고의적 경선 무산’ 혐의에 집중됐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협상과정에서 참여당 인사들은 ‘일주일만 버티게 해 달라, 일주일만 지나면 (가합의안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요청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유 전 장관이 사퇴해야 야권 단일화는 성사된다”고 ‘유시민 배제론’을 꺼내들었다. 김진표 최고위원도 “유 전 장관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 신뢰회복 조치가 없이는 더 이상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참여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천호선 최고위원은 “경기지사 경선 룰에 대해 한 번도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며 ‘가합의안’을 부인했고, 유 전 장관 역시 “후보 간 단일화 논의를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격화되는 양측의 대립은 춘천에서 칩거 중이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까지 불러냈다. 손 전 대표는 ‘없던 일’이 돼버린 경기지사 후보 단일화 협상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4월 22일 하루 동안 여의도에서 유 전 장관과 김진표 최고위원을 잇달아 개별 접촉하는 ‘파격행보’를 보였다.
손 전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연대 논의 결렬에 따른 안타까움을 피력한 뒤 “6·2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후보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중재역’을 자임했다. 유 전 장관과 김 최고위원은 ‘총론’엔 동의하면서도, 협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손 전 대표의 이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손 전 대표는 두 사람과의 회동 이후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실제 손 전 대표와의 만남 직후 양측 실무진들은 회동을 갖고 ‘새로운’ 협상안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의 측근인 이찬열 의원은 “단일화가 실패하면 김 지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손 전 대표의) 절박함이 후보들에게도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이날 ‘바깥나들이’는 김 최고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유 전 장관 역시 ‘유시민 펀드’를 통해 3일 만에 경기지사 법정 선거비용(40억 7300만 원)을 확보하는 등 양측 모두 ‘완주 의지’를 내비치자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었던 데 따른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날 행보는 복귀 시점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었던 탓에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산 위기에 놓인 야권연대의 물꼬를 틈과 동시에 화려한 복귀를 계산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당장 ‘손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관심사다. 정치권에선 “그래도 김진표 편 아니겠느냐”는 게 중평이지만, 유 전 장관을 선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손 전 대표 도움으로 유 전 장관이 경기지사가 되면, 2012년 대선에서 잠재적 경쟁자를 눌러 앉히는 효과에다 유 전 장관의 광적인 지지자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재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사면초가에 몰린 유 전 장관을 도와준 셈”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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