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지방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 수원에서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 민노당 강기갑 대표, 참여당 이재정 대표, 창조한국당 송영오 대표가 유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기자와 만난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는 지난 5월 13일 김진표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경선 승리를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경선 승리가 그만큼 극적이었기에 ‘유시민 효과’는 6·2 지방선거의 핵심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온통 ‘유시민’ 얘기다. 지방선거 여론조사를 분석할 때도 ‘유시민 변수’를 조명해야 하고, 천안함 사건 원인을 둘러싼 시비를 벌일 때도 중심엔 유시민이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5월 초까지만 해도 “후보직을 사퇴하라”던 민주당에선 ‘유시민 효과’가 서울과 인천에까지 미치자 “유 후보 승리를 위해 매진하겠다”(정세균 대표)고 말을 바꿨고, 한나라당은 정몽준 대표가 직접 나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유 후보는 공직후보 자격이 없는 만큼 후보를 사퇴하라”며 ‘유시민 때리기’를 주도하고 있다. 여론조사 지표가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경기도가 흔들리고 있다. 아직까진 한나라당과 참여당 모두 김문수 후보가 유 후보를 조금 앞서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김 후보 측은 8∼10%포인트 앞섰다고 주장하지만, 유 후보 측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는 판단이다. 덕분에 “수도권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지지율도 5~10%가 동반 상승”(박기춘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하는 추세라고 한다. 또 민주당 서울시장·인천시장 후보들의 지지율 반등에도 영향을 주는 등 주변으로도 파급이 미치고 있다.
이 같은 ‘유시민 효과’ 때문인지 서울시장 후보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대 지방선거가 서울시장 후보들의 ‘얼굴값’으로 치러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는 대단히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선 “차라리 유시민이 서울시장 후보가 됐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만시지탄의 넋두리도 들린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와의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서부터다. 특히 TV토론에서 한 후보가 오 후보에 연이은 ‘판정패’를 당하자 야권 내부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이런 기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일단 경선 자체가 극적이었다. 유 후보는 ‘0.96%’ 차이로 김진표 후보를 눌렀다. 후보 본인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둔 전적이었다. 그래서 불이 붙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 후보는 “(김진표 후보로는) 김문수 후보에게 패할지도 모른다는, 민주당 지지자 일부의 불안감, 그런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날 지지해줄 것이란 기대감밖에는 기댈 곳이 없었다”며 “이건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바타’란 점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지난 5월 23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는 그의 존재 가치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국민참여당의 한 관계자는 “한명숙 후보도 있고 ‘좌희정·우광재’(안희정·이광재 후보)도 있지만, 대부분 손쉽게 후보가 된 반면 유 후보는 단일화 경선에서 ‘노무현 바람’을 일으킨 2002년 광주 경선을 재현해보였다”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노무현식 승부수 정치’를 선보임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을 고스란히 상속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야권도 속속 결집하고 있다. 민주당 경기도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얼마 동안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던 당원들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지역사무실을 찾고 있다”며 ‘유시민 효과’가 실제 작동하고 있음을 증언했다.
유 후보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저는) 이명박 정부는 반대하지만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는, 신진 야권지지층을 대변했습니다.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통 야당세력과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선에서 이분들이 저를 선택함으로써 양측 간 화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때문인지 호남향우회로 대변되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한 유 후보의 자세도 확연히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을 “지역정당”이라고 매섭게 몰아세웠던 그다. 또 경기권 호남향우회 일각에서 과거 유 후보의 김대중 전 대통령 비판 전력을 들어 사과를 요구하는 등 ‘비토’ 분위기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유 후보가 김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양측의 감정의 앙금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 유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집단 이지메’가 그를 아군으로 보지 않던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동질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유 후보만큼 반한나라당 정서를 결집하는 데 확실한 임팩트를 주는 사람이 없다”며 “그것만으로도 당대 가장 뛰어난 야당 정치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유 후보에 대해 ‘과잉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철희 KSOI 컨설팅본부장은 “경기도 밖으로 파급이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기진압’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한나라당 내부 여론조사에서도 적신호가 켜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보수표를 결집하는 데 유 후보만 한 ‘유인물’이 없다는 점도 감안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유풍’이 2002년 ‘노풍’과는 달리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유시민 바람이 돌풍이 되기 위해서는 단일화 시점에서 김문수 후보를 따라잡을 정도의 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며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여파로 야권 내부의 추가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유시민 효과’는 단발성 호재로 그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유 후보 지지세의 상승세가 둔화된 것도 당시에 충분한 추동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유풍’은 미풍일까, 태풍일까.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