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채 회장 |
“(초당 요금제를)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혀 통신료를 인하할 수 있는 요금제 확대 정책을 강화할 것이다.”
지난 4월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55회 정보통신의 날’ 행사에서 이석채 KT 회장은 기자들에게 방통위 요금정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KT 내에선 스마트폰(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무선 데이터 요금을 인하했는데 음성 통화 요금까지 인하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 SK텔레콤이 이미 초당 요금제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만큼 KT가 초당 요금제 대열에 뒤늦게 뛰어들어봤자 ‘경쟁사 따라 하기’로 비칠 우려도 있다. 결국 이 회장은 KT 내부 정서를 반영한 발언을 한 셈이다.
여기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생 공약으로 통신요금 20% 인하를 제시한 바 있다. 현 정부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 서민 정책이랄 수 있는 통신요금 인하에 나서려는데 이에 반대하는 것은 자칫 정부에 맞서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방통위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밝히고 나섰다. 방통위는 스마트폰에 대해 과도한 보조금이 지급될 경우 통신사업자 간 과열 내수경쟁을 불러서 통신요금 인하나 콘텐츠 연구개발 등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 보조금도 마케팅비 규제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이폰 돌풍에 맞닥뜨린 다른 통신업체들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4월 22일 ‘정보통신의 날’ 행사에 앞선 무역협회 초청 강연을 통해 “아이폰이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한다는 논란이 있는데, 이는 우리사회가 보조금 지급에 익숙한 상황에서 생긴 오해인 것 같다”며 “아이폰은 보조금 지급이 없다”고 일축했다.
방통위에 대한 이 회장의 최근 발언들은 통신업체 CEO(최고경영자)가 정부 정책에 반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지난해 초 KT CEO 취임 당시부터 낙하산 수식어를 달고 다닌 이 회장이 현 정부 실세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거란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 회장의 발언을 접한 KT 내부 분위기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몇몇 KT 직원은 “안 그래도 KT는 외압설이 나올 때마다 기가 죽는 조직이었는데 이번엔 ‘우리도 할 말은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고 밝힌다. 최근 이 회장 모습을 통해 KT 내에선 낙하산 이미지도 제법 많이 희석됐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를 향한 쓴 소리 역시 KT 내에서 호평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22일 강연에서 이 회장은 “KT가 선보인 스마트폰 ‘쇼옴니아’는 홍길동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옴니아를 홍보하면서 SK텔레콤 모델은 ‘T옴니아’로 광고하고 KT 제품은 ‘쇼옴니아’란 명칭 대신 기기번호인 ‘SPH-M8400’의 이름으로 출시하는 등 차별대우한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KT의 한 직원은 “삼성을 향해 싫은 소리 하는 기업집단이 어디 있느냐”며 이 회장의 소신 발언을 높이 평가했다. 이 회장이 낙하산 이미지를 벗고 ‘정치적 영향력도 겸비한 전문경영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견도 KT 주변에서 들려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강력한 내부 감사와 측근의 요직 등용 등 그동안의 조직 장악력 높이기 방식에서 벗어나 방통위와 삼성 등에 대한 강경 행보를 통해 ‘제 식구를 위해 권력에 맞서는’ CEO의 모습을 보이면서 내부 민심을 얻으려는 것 같다”고 밝힌다.
이 회장이 최근 들어 방통위 정책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장과 현 정부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각 논의가 나돌 때면 이 회장은 어김없이 유력한 입각 후보로 거론되곤 한다. 22일 행사에서 이 회장은 “KTF와의 합병, 아이폰 도입 등 과거 정권에서 불가능했던 일들을 이번 정권에서 모두 해결해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낙하산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 속에 이 회장이 과연 정부의 입김과 KT 내부 민심 사이에서 어떤 운영의 묘를 발휘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