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5월의 첫날을 장식하는 노동절은 가뜩이나 줄어든 법정 공휴일에 단비 같은 존재다. 법으로 보장되는 이 휴일은 직장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더 소중하다. 하지만 올해는 토요일이라 아쉽기만 하다. 프랜차이즈 회사에 근무하는 H 씨(29)는 아쉬움을 넘어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프랜차이즈업의 특성상 주말에도 점주들이 전화로 문의를 해올 수 있다면서 저희 회사는 주6일제를 실시하고 있어요. 사실 토요일에 출근해도 별다른 일 없이 시간만 죽이다 올 때가 더 많아요. 이번에 노동절이 토요일이라고 안타까워하는 직장인들 많은데 그날 출근해야 하는 제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요. 상대적으로 비애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H 씨는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휴일이라는 걸 잘 알지만 회사 내에 그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마당에 먼저 나설 수는 없다. 그는 “속 쓰리지만 꾹 참는 수밖에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화창한 날이 많은 5월이 오히려 불만인 직장인들도 있다. 5월에 사내 행사가 유독 몰리는 바람에 소중한 휴일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인 노동절만큼이나 아깝다. 귀금속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C 씨(여·32)는 평소 사용하지도 않을 등산화를 사게 생겼다고 툴툴댔다.
“5월 중순에 전사적으로 등산을 간대요. 근데 왜 꼭 쉬는 날 가는지 모르겠어요. 주말은 근로계약서에도 명시된 휴무잖아요. 이번 등산은 업무의 연장이라며 모두 참석하라고 하는데 그럼 업무시간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동생네 회사는 체육대회를 한다더라고요. 전국 매장 점주들까지 다 참여하는 체육대회라 본사 직원인 자기는 빠질 엄두도 못 낸다네요. 땡볕 아래서 자외선 맞아가며 땀 흘릴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증이 난다고 그래요. 5월에 유독 워크숍이니 체육대회니 뭐 이런 행사가 많은데 회사 측에서는 사원들을 위한 거라고 하지만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직원들이 몇이나 될까 모르겠어요.”
꿀 같은 휴일을 누리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버금가는 것이 경제적인 스트레스다. 유난히 선물 살 일이 많은 달이 5월이다. 유통회사 직원 K 씨(여·35)는 다가오는 어린이날 예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이한테 올 초부터 게임기를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그때는 쉽게 말했지만 최근에 가격을 알아보니 20만 원에 가깝더라고요. 빠듯한 살림에 20만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거든요. 평소 맞벌이하면서 잘 놀아주지도 못해서 큰맘 먹고 사주자 했는데 막상 어린이날이 다가오니까 부담이 되네요.”
어린이날 말고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또 있다. 5월에는 스승의 날도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이 고마운 은사를 직접 찾아뵙고 선물을 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학부모가 되면서부터는 자녀 때문에 스승의 날 압박에 시달릴 때가 더 많다.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M 씨(여·37)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담임선생님 선물로 뭘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라고.
“요새는 하도 말들이 많아서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사실 직장 다니면서 평소에 학교에 자주 가보지도 못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너무 좋은 걸 하면 서로 부담일 테고, 다른 엄마들하고 비교될까 싶어 아주 저렴한 걸 살 수도 없어요. 차라리 엄마들끼리 조금씩 모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해요. 스승의 날이 하필이면 학기 중인 5월에 있어서 아주 곤란하네요. 방학기간인 2월로 옮기자는 운동도 있는데 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부모들 마음은 다 비슷할걸요.”
스승의 날처럼 ‘비교’ 때문에 섣불리 선물을 고를 수 없는 건 어버이날도 마찬가지다. 직장인들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부담을 안겨주는 날이기도 하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P 씨(33)는 어버이날만 되면 형제들끼리 신경전이 치열하단다.
“형제끼리 우애가 나쁜 편은 아닌데 명절이나 어버이날 같은 때만 되면 은근히 서로들 눈치를 봅니다. 나만 너무 처지는 선물을 하는 건 아닌지 전화해서 슬쩍 떠볼 때도 있죠. 같이 부담해서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할 때도 있는데 대체로 간소하게 선물로 할 경우가 더 많거든요. 최소 20만 원인데,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집사람 눈치도 좀 보입니다. 처갓집 선물도 준비해야 하는데 더 적게 할 수는 없거든요. 보너스 달도 아니고 40만 원 이상이 뭉텅 떨어져 나가니까 부담이 크죠.”
P 씨는 직장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결혼 후에는 양쪽 집안행사에 배로 비용이 들어가 5월이면 풍성한 행사에 반비례해 지갑은 얇아진다”고 털어놨다.
‘솔로’라고 5월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솔로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결혼 전이라 주변 지인들 결혼식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L 씨(여·31)는 5월이면 왜 이리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은지 모르겠단다.
“봄이나 가을에 결혼 날짜를 잡는 커플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중에서도 5월이 최고예요. 광고홍보회사라 청첩장 파트가 있는데 그쪽도 5월에 업무가 가장 많더라고요. 결혼식 축의금도 점점 올라서 어지간하면 3만 원은 내기도 창피해요. 이번 달에는 가뜩이나 결혼식도 매주 있는데 아는 분 결혼식은 심지어 호텔에서 해요. 친한 친구라면 많은 돈 내도 아깝지 않은데 호텔이라 최소 밥값만 해도 5만 원 이상인데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어요. 그냥 속만 쓰리죠 뭐.”
언제 받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적금’이라 생각하지만 L 씨는 축하하는 마음 못지않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는 “5월만 되면 한 주에 결혼식이 두 건이나 있을 때도 있다”며 “가계부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한 포털 취업서비스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직장인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755명 중 77.4%가 가정의 달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것. 평균 예상 비용만 30만 원에 달한다. 비용 마련도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심지어 ‘투잡’이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직장인도 상당수에 달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N 씨(여·26)는 “5월이면 행사가 이어져서 휴일이 많아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며 “돈은 돈대로 나가는 터라 5월에 있는 기념일들이 다른 달로 좀 옮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