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양 포스코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 |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있기 이틀 전인 지난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가 열렸다. 공식 발표 전이었지만 포스코가 유력하다는 전망 속에 회의장을 찾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에게로 자연스레 많은 시선이 쏠렸다. 기자들의 대우인터내셔널 관련 질문에 신동빈 부회장은 사실상 패배를 시인하며 포스코에 축하의 뜻을 전했다. 반면 정 회장은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지난 14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포스코를 대우인터내셔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통한 글로벌 역량 강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통해 롯데그룹의 재계 5위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한데 재계와 금융권 일각에선 포스코의 이번 승리를 ‘상처뿐인 영광’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당초 ‘무혈입성’이 예상된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작업이 롯데의 인수전 막판 참여라는 돌발 변수로 난항을 겪은 까닭에서다.
포스코는 이번 본입찰에 롯데보다 2000억 원가량 높은 3조 4000억~3조 5000억 원 정도의 인수금액을 써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올 초에 적정가격으로 거론되던 2조 3000억~2조 6000억 원보다 1조 원 가까이 높아진 금액이다. 현재 대우인터내셔널 주가(5월 12일 종가 기준)는 3만 4450원. 지난 2월 24일 인수의향서(LOI) 마감 당시 대우인터내셔널 주가가 3만 6200원이었으니 올 초에 비해 기업가치가 딱히 높아진 것도 아니다.
결국 대우인터내셔널 몸값이 이렇게까지 오른 것은 롯데의 인수경쟁 참여 효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정준양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로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의 새 주인 자리를 어렵지 않게 예약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 직전 롯데가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포스코는 ‘2파전’이라는 달갑지 않은 표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재계와 금융권엔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위해 약 3조 원을 준비했는데 롯데는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준비해놓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결국 포스코는 올 초 예상치를 크게 넘어선 금액을, 롯데는 시장의 기대치에 다소 못 미친 금액을 각각 써낸 셈이다.
이번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서 맞붙었던 포스코와 롯데는 높은 현금 보유고 덕분에 향후 대형 M&A에서 재차 유력 후보로 거론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이번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 결과를 기점으로 두 기업의 향후 M&A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우선 포스코와 관련해선 지난 2008년 인수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재참여 가능성이 거론된다. 포스코는 당시 G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유력시 됐으나 GS와의 가격 견해 차이로 인해 컨소시엄이 결렬되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한화에 내줘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한화가 자금 문제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면서 재계의 시선은 다시 현금부자 포스코를 향해왔다. ‘수조 원에 달하는 조선업체를 인수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국내 자본은 포스코뿐’이라는 공감대도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준양 회장은 지난 1월 열린 포스코 CEO포럼에서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시장에 나오면 검토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 11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때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신중론을 보였지만 재계에선 매각 절차가 잡히는 대로 포스코의 움직임이 기민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KAMCO)가 대우조선해양의 2대주주라는 점이 매각과정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관심을 끈다.
재계에선 당초 예상보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많은 금액을 들이게 된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전략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 2008년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 예상가는 6조~7조 원에서 많게는 10조 원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재계와 금융권에선 제아무리 현금부자인 포스코라 해도 대우조선해양 단독 인수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반면 롯데의 대형 M&A 전망에 대해선 긍정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캠코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대우인터내셔널을 팔 수 있게 된 일등공신으로 롯데가 거론되면서 향후 대형 매물 M&A 과정에서 롯데가 반사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재계와 금융권 관계자들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 대해 “승자인 정준양 회장에겐 새로운 고민을, 패자인 신동빈 부회장에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줬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