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증시와 정치권력 간 함수의 원형(Prototype)은 2000년대 초반 김대중(DJ) 정부 시절 ‘IT·벤처 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했지만, 정치권의 의도적인 띄우기도 없지 않았다는 평가다.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당시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정치권이 IT·벤처 열풍을 후원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후 몇몇 벤처 1세대와 권력층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것은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증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DJ 정부 때는 IT·벤처 붐에 이은 신용카드 사태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기업보다는 가계에 잉여자금이 많았고,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재정 확충이 절실했다. 신용카드 지원책을 통한 내수 진작은 가계 잉여자금을 시장을 통해 기업과 정부로 흡수하기 위한 목적도 적지 않았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 발급기준 완화와 소득공제혜택으로 대표되는 신용카드 지원책은 내수시장을 키워 내수업종의 시장 비중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저금리 정책과 지방 주택단지 개발이 증시에 영향을 줬다. 저금리와 천문학적인 토지보상 자금이 증시를 자극한 것. 주택 관련 건설주 은행주 증권주는 노무현 정부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펀드 열풍도 넘쳐나는 시중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기업 규제 등으로 인한 경제 불안이 지적됐지만 주가상승 폭만큼은 역대 정권을 통틀어 가장 높았던 점이 이를 입증해준다.
현 정부는 탄생과 동시에 4대강과 녹색테마로 증시에 화두를 던졌다. 4대강 개발 수혜주인 건설주의 경우 지방 미분양 사태로 빛이 다소 바랬지만 여전히 토목 관련 건설주들은 주택 관련 건설주에 비해 견고한 편이다. 녹색테마는 금융위기 기간 동안 치솟은 국제 에너지 가격과 맞물려 전 세계적인 흐름과 결합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녹색테마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IT와 자동차 부문은 우리 증시의 핵심 업종이라는 점에서 증시가 받는 영향력은 더욱 크다. LED, 2차 전지 등이 좋은 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번 정권 들어 사면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가 이뤄진 점도 정치와 증시의 함수관계에 대입해볼 만하다. 정치적으로 일자리 만들기는 표심과 직결되는데, 일자리 만들기에는 기업의 대규모 투자만 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와 증시의 함수관계를 투자전략에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일단 시장규모와 성장성에 대한 예측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최고투자책임자는 “가치투자에서도 미래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는 중요한 요소다. 과연 해당 업종이 신성장을 할 만한 분야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함께 해당업체가 신성장을 위한 기초체력, 즉 확실한 현금흐름이나 투자자금 마련이 가능한지를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2차 전지와 LED, 스마트폰 부문 등으로 주목 받고 있는 LG화학 삼성전기 삼성SDI LG이노텍 등은 향후 상당히 유망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물론 이들 종목의 적정 밸류에이션(기업가치)과 투자 시기는 투자자 개인별로 얼마만큼의 목표수익률을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반기 구체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그리고 금리인상 등의 정책재료도 주요한 투자판단 근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업체가 퇴출될 경우 살아남은 업체의 수혜는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건설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중소 주택건설주가 도태되면 대형 종합건설사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은행주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접근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애널리스트는 “기업금융이 많은 우리금융 등보다는 우량기업과 가계 대출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그룹 내 은행 비중이 낮은 신한금융이 중장기적으로 유망하다. 단기적으로는 현 정권 실세가 최고경영자여서 향후 M&A(인수·합병)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나금융 등에 대한 긍정적 접근이 유효하다”고 귀띔했다.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정치는 중요한 투자판단 요소다. 전문가들이 가장 유망하다고 꼽은 시장은 단연 중국인데, 그 배경에는 안정적인 정치권력 구도도 큰 작용을 한다. 실제 중국의 긴축과 환율정책에 대한 여의도 증시 전문가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본부장은 “경제정책만을 놓고 볼 때 중국은 굉장한 효율성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 안정적인 권력구조와 13억 인구에서 뽑힌 엘리트 관료의 능력은 중국 시장을 더욱 유망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브라질 역시 룰라 대통령 이후 정치권력의 안정이 이뤄지면서 중국에 이은 이머징(신흥) 유망국가로 급부상했다. 이와 비교해 러시아와 인도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내에서도 중국과 브라질에 비해 한 단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총리와 대통령의 권력이 뒤바뀐 러시아,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한 인도에 외국인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이 같은 정치안정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이번 재정위기로 이미 내부분열이 심하게 일어난 데다, 그동안 사회안전망 강화를 고집하던 좌파 정권들이 힘을 잃고 있다. 최근 영국의 경우가 좋은 예다. 좌파와 우파의 권력경쟁이 심화될 경우 정치, 즉 정책 일관성과 효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안정을 되찾는다 해도 유로존 내의 정책일관성을 이뤄내는 과정이 또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정부는 월가 및 보수층과 사실상 전쟁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 중인 금융개혁 법안은 미국 경제 최대 산업이자, 보수층의 자금줄인 금융업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투자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정치·정책 안정성이 담보되는 곳에 더 많은 투자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이때 관심을 가져야 할 업종은 정부정책 수혜주다. 예를 들어 내수 회복과 함께 과열을 막으려는 중국의 경우 부동산 관련 투자는 줄이고, 내수·소비 관련 업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펀드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