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획재정부 고위 인사는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본이 세계 경제 관련 기구 등에 돈을 많이 쓰고 있음에도 최근 각종 국제회의에서 한국에 밀리는 것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이 인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은 바로 지난 5월 15일에 있었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회 의장국에 한국이 선출된 것이다.
EBRD는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61개 회원국을 두고 있다. 이름에는 유럽이 들어가 있지만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도 원년 멤버다. 경제력 차이에 따라 기금을 내다보니 일본의 지분율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대표국가와 같은 8.64%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분은 1.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럽이 아닌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총회 의장국을 차지한 것은 우리나라였다. 우리나라는 5월 15일부터 내년 5월 15일까지 총회 의장국을 맡아 EBRD를 대표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은 유럽 국가들에게 지분율이 높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게 상징적 의미가 큰 첫 비유럽 의장국을 준 것에 대해 상당한 서운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일본이 무척 속 쓰려 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국 자리를 한국에 빼앗긴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좌우하고 있는 G20정상회의는 그동안 미국과 영국에서만 열렸지만 지난 6월 캐나다, 11월엔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다. 게다가 당초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회의(11월 11∼12일)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1월 13∼14일)보다 먼저 개최되는 것으로 확정돼 APEC 분위기마저 식어버리게 되자 울상이다.
G20정상회의 일정은 우리나라가 회의를 유치했을 때부터 일본과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여온 사안이었다. 인접 국가에서 대형 국제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리는 관계로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가 먼저 개최되는 회의에 집중되는 탓이다. 이 외교전에서도 한국은 축배를 들었고, 일본은 고배를 마신 셈이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