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집값과 전세값 하락세는 물론 경매시장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등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전셋값 내렸다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1억 원 내외 전셋집 찾기가 여전히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기전세주택(시프트) 공급을 늘린다고 공약한 거나 바라보고 있어야 할까 싶습니다.”
6·2 지방선거 이후 매수세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던 집 주인들은 당선자들의 공약이 ‘집값 안정화’에 맞춰진 만큼 지금의 집값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했던 지금까지 집값이 이 모양인데 민주당이 압승한 이번 선거 이후에는 오죽하겠느냐는 것이다.
주택 시장이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값 상승을 주도하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용인 분당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 집값을 중심으로 하락세가 더 커지고 있다. 경기도와 신도시 등 수도권의 집값 하락세는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집값 하락기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수로 통하는 경매시장에도 사람들이 발길이 줄어들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이 떨어지고 있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줄곧 상승세를 타던 전셋값도 하락세로 꺾였다. 부동산 시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국민은행의 5월 마지막 주 주간 아파트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매매값 변동률은 0.0%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대부분의 지역이 하락하면서 전 주 대비 0.1% 떨어져 7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반면 김해(0.5%) 부산 사상구(0.5%) 전주 완산구(0.5%) 등 지방이 강세를 보이면서 하락세를 보완하는 모습이다.
특히 광명(-0.6%) 일산 서구(-0.5%) 의왕(-0.5%) 등 수도권 외곽의 아파트값 하락세는 바닥이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의 집값은 9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에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앞둔 가운데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이들 지역의 집값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미끄러졌다. 게다가 매수세는 극도로 위축됐다. 집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비율을 분석한 국민은행의 매도세 매수세 동향(5월 마지막 주 기준)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서 매수세가 우위에 있다고 답한 중개업소가 0.9%에 불과했다.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지방선거 후 개발 호재나 규제완화를 기대하는 수요도 있지만 집값 안정을 부르짖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대약진을 한 만큼 집값 상승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집값 상승에 대한 부담감으로 정치권에서 규제완화 카드를 쉽사리 내놓을 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주택시장의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5월 초까지만 해도 주말에 신혼집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발길도 뚝 끊겼다”면서 “급매물이 있다고 알음알음 매수자를 찾아 전화를 돌리고 있지만 ‘더 싼 집 없느냐’고 되묻는 사람들밖에 없어 맥이 탁 풀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셋값=6월 첫 주 들어서는 지난 2009년 1월 이후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던 서울지역 전셋값이 2주 연속 소폭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던 신도시와 인천 전셋값도 5개월 만에 다시 하락세다. 신혼부부와 학군수요가 몰리는 봄철 전세수요가 일단락된 데다 강북 뉴타운과 파주신도시의 신규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급전세’ 매물이 늘어난 탓이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입주가 시작되는 미아뉴타운 인근은 새 아파트 전세매물이 늘어나면서 전셋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2, 3단지 76㎡형은 1주일 새 1000만 원 하락한 1억 5000만 원 선에서 전세매물이 나오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도 입주 2년차를 맞아 전세매물이 등장하면서 미끄럼을 타고 있다. 이 아파트는 전세난을 타고 전셋값이 6개월 동안 1억 원이 올랐다고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곳. 송파구 신천동의 S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중대형은 전셋값을 시세 대비 2000만 원씩 깎아 시장에 내놔도 반응이 없다”면서 “지난해 말에 5억 5000만 원에 전세가 나갔던 신천 파크리오 149㎡를 지금 전세로는 5억 원에도 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경매시장=부동산 시장 침체는 기존 아파트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말 이후 북적북적했던 법원 경매시장도 한산하다 못해 텅 빈 분위기다. 더욱이 최근 집값 급락으로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은 사례가 속출하면서 경매 전문 투자자들도 쉬어가고 있다. 경매 물건이 감정평가를 거쳐 실제 법원에 나오기까지 4∼6개월이 걸리는데, 최근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서 감정가가 현재가격보다 비싼 상황이 이어진 탓이다.
경매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울 서초동 A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경매에 신건으로 나온 것들은 감정가 이상으로 입찰가를 써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거래금액보다 비싸서 굳이 경매를 할 필요가 없다”면서 “시장이 한산한 만큼 유찰이 될 때까지 한숨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경매시장마저 인기를 잃으면서 경매 아파트의 낙찰가율도 급락세다. 지난 5월 24일 성남지원에서 낙찰된 야탑동 탑마을 대우아파트 134㎡형은 2회 유찰된 후 감정가의 64%인 5억 7600만 원에 주인을 찾았다. ‘버블세븐의 자존심’인 분당 40평형대 아파트가 5억 원대에 낙찰되면서 경매 누리꾼들 사이에는 ‘분당도 분당 나름’이라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다.
△하반기 전망=시장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부동산 중개업소는 물론이고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도 비관론이 만연하다. ‘부동산 거품 붕괴론’에서 시작해서 ‘완연한 하락세’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다양하지만, ‘상승반전’이라는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부동산114의 김희선 전무는 “오는 3분기 이후 낙폭이 큰 중대형 아파트가 바닥권을 형성하게 되면 거래량 수준에서는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거래가 늘어나는 것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속단하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물론 집값 폭락을 바라지 않는 정부가 하반기가 되면 어느 정도 규제를 완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규제완화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올해 예정된 3차 보금자리주택 물량공세를 이어갈 것인 데다 신규아파트 입주량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기조는 하락이든 상승이든 연착륙에 맞춰져 있다”면서 “2차에서 추락한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의 인기를 끌어올리려면 주변지역의 집값 상승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팀장은 “올해 신규아파트 입주물량이 많은 데다 대규모 보금자리 공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상승반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더욱이 정부가 ‘하방안정화’를 못 박은 만큼 민간 주택시장의 반등을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은 물론 경기도의 소형 오피스텔은 ‘나홀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오피스텔 청약시장은 ‘청약광풍’ 현상을 빚고 있다. 대우건설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짓는 ‘잠실 푸르지오 월드마크’ 오피스텔은 지난 5월 11∼12일 일반 분양(89실)을 받은 결과 최고 89 대 1, 평균 4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 16일 인천 소래·논현지구에서 분양한 ‘인천 에코메트로 3차 더 타워’ 오피스텔은 평균 9.17 대 1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단지 아파트는 청약 경쟁률이 0.6 대 1에 그쳤던 곳이다.
김명지 파이낸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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