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선 르노그룹의 쌍용차 인수전 참여 목적이 생산력 강화에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31일 BoA메릴린치증권은 “르노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면 르노삼성의 생산력이 20만 대 이상 늘어 생산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르노삼성의 연간 생산능력은 25만 대로 추산된다.
르노삼성은 최근 국내 판매 호조와 더불어 5월 말부터 뉴SM3 수출을 시작한 데 이어 뉴SM5 수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내외 주문량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연 생산 20만 대 이상이 가능한 쌍용차 시설을 확충해 생산능력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려 보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쌍용차의 전 주인인 중국 상하이차가 여전히 쌍용차 지분(9.95%)을 보유하고 있어 르노가 쌍용차-상하이차를 중국시장 판로 개척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르노의 쌍용차 인수 추진 소식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 28일 르노의 인수의향서 제출이 알려지면서 쌍용차 주가는 전일 종가(1만 1200원)보다 12.95% 오른 1만 2650원을 기록했다. 다음 거래일인 5월 31일엔 상한가(1만 4500원)를 쳤다. 그런데 여기엔 르노의 쌍용차 인수와 삼성그룹의 관련성을 엿보는 기대심리 또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지난 2000년 삼성차를 르노에 6400억 원에 팔아넘기면서 자동차사업에서 공식 철수했다. 그러나 삼성카드가 여전히 르노삼성 지분 19.9%를 보유한 상태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 실패 이후 “바퀴 달린 것은 절대 안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지만 그에 못지않게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출설도 자주 오르내렸다. 최근 들어선 아예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 다시 진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 무렵 삼성이 쌍용차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올 초 삼성의 한 관계자는 “쌍용차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생산력이 너무 낮았다”며 적합한 M&A(인수·합병)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였다. 일각에선 쌍용차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르노가 갑작스레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배경에 삼성의 입김이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쌍용차 인수전이 장기적 차원에서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출 가능성을 그려볼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르노삼성을 통한 자동차 사업 ‘우회 진출설’과 관련해 삼성 측은 “바퀴 달린 건 안 한다는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못 박는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카드가 르노삼성 지분을 갖고 있고 이름을 빌려주면서 로열티를 받을 뿐 르노삼성은 삼성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외환위기 당시 삼성차 실패로 홍역을 치른 삼성은 ‘자동차’란 말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1999년 삼성차 워크아웃 결정으로 채권단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던 삼성이 다시 자동차 사업에 나설 경우 맞서야할 여론에 대한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재계와 금융권에선 “삼성카드가 르노삼성 지분 19.9%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자동차 사업 관련 소문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자동차 업계 소식통들 사이엔 “정부가 국내 산업기반이 있는 르노삼성을 내심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삼성의 직간접적 참여를 바라는 것”이란 시각이 팽배해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