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하녀> |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로 남자를 탓한 적이 많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소홀해진다 싶으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유지태의 대사를 빌어 투정하곤 했다. 그나마 이런 추궁도 ‘러브러브’ 모드에 있을 때에나 가능했고, 남자친구가 진짜 애정이 식은 것 같으면 혼잣말을 했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거 아냐?’라고 말이다. 데이트 초기에는 매일 집 앞에 찾아와 만남을 구걸하다가도 관계가 안정적인 모드에 돌입하면 ‘오늘은 피곤하다. 주말에 보자’고 말하는 게 남자들의 속성이니까. 섹스도 마찬가지다. 첫 섹스를 위해서 럭셔리한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남자도 섹스 라이프가 장기적으로 패턴화되면 더 이상 ‘한 번만 자자’고 조르지 않는다. 성욕도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월 따라 변하는 게 성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르가슴 필살 체위, 성감대의 위치, 그리고 좋아하는 애무법도 섹스가 반복되면서 달라진다. 오럴 섹스라면 질색하던 그녀도 오럴 섹스 마니아가 될 수 있고, 정상위만 고집하던 여자도 은근히 후배위를 바라게 될 수 있다는 얘기. 물론 남자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연애든 섹스든 같은 패턴이 계속되면 심드렁해지는 것은 남자만이 아니니까.
연애 초기에는 그가 유두와 귓불을 애무하기만 해도 짜릿함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 위쪽보다는 허리 아래쪽에 더 집착하게 되는 여자들이 많다. “항문 애무라면 질색을 했는데 막상 애무를 받고 보니 쾌감이 상당한 거 같아”라고 말하는 여자도 많다. 섹스를 하는 주체인 여자와 남자가 바뀌지 않아도, 그래서 여자의 G스폿과 남자가 선호하는 체위가 바뀌지 않아도, 섹스의 패턴은 계속해서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애 초기에 섹스 트러블로 고민했던 후배 A는 “그가 G스폿을 찾았을 때 ‘아, 거기’라고 했더니, 섹스할 때마다 같은 체위에서 같은 각도로 피스톤을 하는 거야. 처음에는 그가 내 성감대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뻤지.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걸 원한다구”라고 말했다. 아마도 A의 남자친구는 A의 쾌감 포인트를 찾은 후 ‘이제 만족하겠지’라고 안심했을 텐데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 B는 옛 남자의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옛날의 그는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거든요. 페니스도 크고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기술도 좀 있는 편이어서 만족스럽고 좋았죠. 처음에 ‘나만 따라와’라며 리드하던 그와 섹스 하는 게 너무 편하고 좋았던 건 사실이에요. 내가 잘 못해도 그가 다 알아서 해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리드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너무 일방적이랄까. 그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체위를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자기가 잘하는 방식대로 나를 이끌었을 뿐이죠.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남자친구는 전 남자친구만큼 섹스를 잘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그는 저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해주는 게 좋아?’라는 질문을 자주 하고 ‘유두를 깨물어주는 게 더 좋아, 세게 흡입해주는 게 더 좋아?’라는 등 끊임없이 내 의견을 묻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그에게 자연스럽게 묻게 되니까 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이다. B는 남자 취향이 바뀐 것이다.
속궁합이 잘 맞던 커플 사이에서도 섹스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부드러운 피스톤을 좋아하던 여자도 어느 순간 강하고 빠른 피스톤을 원할 때가 있는 법. 후배위를 좋아하던 여자도 정상위에서 최고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고, 어느 날 피스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좌위를 꿈꿀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너는 클리토리스를 입으로 오래 자극해주는 걸 좋아하잖아”라고 커닐링구스만 고집하면 여자는 곤란해진다. 여자는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원해도, 입 밖으로 ‘아니, 오늘은 좀 다양하게 즐겨보자’고 말하는 데 서투르니까.
아무리 상대가 같더라도 섹스는 매일 조금씩 달라져야 하고 계속해서 발전되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애무와 체위를 시도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눌 때에 여자는 비로소 오래된 남자와의 섹스에 기대를 갖게 된다. 허를 찌르는 애무와 예상 밖의 체위야말로 상대를 제대로 흥분시키니 말이다. 그녀가 ‘거기’라고 콕 집어주었다고 해서 같은 곳만을 공략해서는 ‘권태’에 쉽게 도달할 뿐이다. 오히려 여자가 원하는 그 부분을 외면하고 다른 곳을 자극할 때, 여자는 ‘거기’에 더욱 안달하게 되지 않겠나.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