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진스님, 이동관 홍보수석 |
명진 스님의 포문은 이제 방향을 바꿔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을 향하고 있다. 명진 스님은 얼마 전 김영국 조계종 대외협력위원이 안 원내대표의 외압 의혹을 확인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당시 이동관 수석이 기자회견을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 이 수석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석 역시 명진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며 맞불을 놓고 있는 상태다.
명진 스님과 이 수석이 물러설 곳 없는 외나무다리의 결투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누구의 말이 맞던 둘 중 한 사람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명진 스님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간의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봉은사 사태’ 2라운드 속으로 들어가 봤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외압설을 제기한 명진 스님은 이후 직영사찰 문제가 종단 내에서 다시 논의되자 한동안 민감한 발언을 자제했다. 명진 스님이 다시 포문을 연 것은 지난 4월 11일 봉은사 일요법회를 통해서다. 명진 스님의 공격 대상에 오른 인사는 다름 아닌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이었다.
명진 스님은 “김영국 위원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 대통령 직속기구 인사와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이동관 수석과 통화했다. 김 위원은 이 수석으로부터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동관 수석은 김영국 위원에게 선거법 위반에 따라 박탈돼 있는 피선거권을 사면 복권시켜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성남시장 캠프에서 일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과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도 경기도권 군수 출마를 준비했던 김 위원으로서는 출마를 위해서는 사면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김 위원은 사면을 받지 못 했고, 이번 지방선거 출마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에 직면해 있다.(일요신문 933호 참조)
명진스님은 또한 “김 위원이 ‘기자회견을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깐 이 수석이 전화기에 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는 무엇이 두려워 김 위원의 기자회견을 막나”라며 “이렇게 더럽고 추잡한 회유와 협박을 하는 걸 보면 이명박 정권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지극히 염려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명진 스님의 화살이 이동관 홍보수석을 정면으로 겨냥하자 이 수석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가 종교 지도자에게 가급적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명진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 ‘봉은사 외압설’을 밝힌 김영국씨가 지난 3월 23일 명진스님 발언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이 수석은 한 발 더 나아가 김영국 위원도 압박하고 나섰다. 김 위원은 지난 4월 10일 한 인터넷언론을 통해 “최근 지인들에게 기자회견 전날 이동관 수석과 직접 전화통화를 했고, 이때 이 수석이 기자회견을 취소하라는 협박성 말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위원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이 수석이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정말 통화한 사실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진을 봐도 모르겠다”며 “명진 스님과 김영국 씨가 공개사과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도 물러설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이동관 수석이 명진 스님을 고소하는 등 정면 대응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이제 상황은 둘 중에 한 사람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명진 스님의 경우 그가 안 원내대표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만 해도 여론은 그를 ‘현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 종교 지도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조계종 내에서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를 재논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자 이미 종단 내 여론은 상당수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봉은사 신도들 내부에서도 명진 스님이 계속 민감한 발언을 하면서 사태의 본질인 직영사찰 문제가 흐려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진 스님의 폭로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직영사찰 전환 문제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불교계 진보세력의 대표주자’라는 이미지도 퇴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동관 수석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김영국 위원과 통화한 적이 없다’는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이 수석이 받는 ‘데미지’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수석은 20년간 정치부 기자생활을 하며 쌓은 뛰어난 정무적 판단 능력과 순발력,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국가정보원을 능가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이 수석은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상당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홍보수석으로서 대언론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해야 할 그가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권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의 이번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정권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됨과 동시에 그가 각종 사안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개인적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가 정권 초반부터 불교계와 불편한 관계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명진 스님과 이동관 수석이라는 브레이크 없는 두 기관차의 충돌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정치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진실 게임에 불교계와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