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비밀애> |
20대에 나와 주변의 친구들은 ‘섹스 가르쳐주는 데 어디 없나?’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영어 학원이나 발레 학원처럼 섹스 학원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섹스 경험이 적었던 그때에 우리는 때로 남자들의 어떤 요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그때는 오럴 섹스조차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섹스를 ‘잘’ 하는 여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30대가 된 지금은 이런 대화가 없어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30대가 된 지금도 나와 내 주변의 여자, 그리고 남자들도 ‘이런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내게 쏟아내곤 한다. 섹스 상대에 대한 미숙함과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은 20대나 30대나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 그러니 섹스 치료사라는 직업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는 20대의 어린 연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섹스 치료사가 된다면? 내가 주변 여자들에게 이 명제를 던지자 후배 A는 “섹스를 잘 못해도 여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겠어요. 손과 발, 입과 혀, 그리고 페니스를 이용해서 여자를 애무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죠. 특히 삽입 전에 페니스를 여자의 그곳에 마찰시키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커닐링구스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데다가 삽입 전에 흥분을 고조시키니까요. 이 과정이 길면 길수록 여자는 오르가슴에 쉽게 도달할 걸요?”라고 말했고, B 역시 “가장 먼저 가르치고 싶은 것은 발가락을 애무하는 법이에요. 발가락 애무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남자에게 애무를 가르칠 때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애무하는 습관을 가르치고 싶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두 여자 외에도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애무에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선배 C 역시 “내 남자친구는 애무 시간이 너무 짧아. 가슴 좀 애무하다가 바로 아래로 내려가서 커닐링구스를 2~3분 하다가 바로 인터코스라니까. 더 황당한 건 자기가 애무를 되게 꼼꼼히, 그리고 길게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야. 나는 그가 애무한 시간이 3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10분 이상 했다고 우기는 거야. 한 번은 내가 몰래 시간을 재봤더니, 10분이 웬 말! 3분도 내가 너무 많이 생각한 거였어. 2분 조금 넘게 하더라고”라며 분개했다.
내가 섹스 치료사가 된다면? 나는 그에게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섹스 가운데 대화만큼 남녀의 섹스 리듬을 맞추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 “어떻게 해주는 게 좋아?” “이게 좋아, 아니면 이게 좋아?” “거기가 좋아” 등등의 말로 서로의 G스폿을 알려주고 “나 지금 딱 좋은데, 이 체위로 좀 더 하면 안 돼?” “좀만 천천히” “좀 더 세게”라고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면서 오르가슴의 리듬을 느긋하게 맞추고 “아, 너무 좋아” “미칠 것 같아”라는 말로 쾌감을 표현하는 법 말이다. 사랑과 쾌감은 몸으로, 그리고 느낌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말로 표현했을 때 가장 확실한 효과를 거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애무를 잘하는 법도, 그리고 애무를 받고 싶은 방식도 솔직한 대화만 가능하다면 문제될 게 없다.
섹스는 파트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스킬이 180도 달라진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섹스 필살기를 부르짖어도 특정 상대가 “난 부드러운 애무보다 아플 정도로 거칠게 애무해주는 게 좋더라”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그녀를 위한 섹스 스킬’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섹스 치료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면 어디선가 섹스 학원이 생기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나는 당신 입에 내 페니스를 깊숙이 넣어주는 것보다 빠르고 강하게 피스톤을 해주는 게 더 좋아. 제발 이로 긁히게만 하지 말아줘”라고 하거나, “당신은 내가 혀로 커닐링구스를 하면서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해주는 게 더 좋아, 아니면 클리토리스를 흡입해주는 게 더 좋아?”라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금 섹스 칼럼을 쓸 수 있는 것도 20대의 내가 친구들과 섹스 고민을 나누는 대신 내 남자와 섹스 대화를 많이 나누었기 때문이라면? 사실이다. 처음엔 그가 “넌 여자가 이런 얘기를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냐? 민망하지 않냐?”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중엔 그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은 좀 별로였어. 그치?”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랬기에 “어젯밤에 포르노를 보다가 재미있는 체위를 봤는데, 그거 한번 해볼래?”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