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스폰서 검사’ 의혹 관련 진상규명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성낙인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위원회의 출발은 그리 순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진상규명위원들의 자격 시비가 거세다. 위원장인 성 교수는 이른바 ‘온정주의’ 발언으로 시작단계서부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연구비 이중수령 의혹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이외에도 성 교수가 지난 2001년 친형 성 아무개 씨가 검찰 조사를 받자 평소 알고 지냈던 법조계 인사들에게 구명운동을 펼쳤다는 제보를 접할 수 있었다.
‘스폰서 검사’ 폭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총대를 멘 성 교수가 되레 각종 구설에 휘말리고 있는 내막을 쫓아가 봤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한국헌법학회 회장으로 법원, 검찰을 막론하고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폰서 검사’ 의혹이 불거지자 대검찰청 내부에서는 이를 규명할 민간위원장 후보로 성 교수를 1순위로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 교수가 정작 진상규명위원장으로 위촉되자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는 위원회의 역할이 검사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의 자체 조사를 관리·감독하는 데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위원장인 성 교수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격 논란에 불을 지핀 건 성 교수 자신이었다. 성 교수는 4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온정주의’ 발언으로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다음은 그가 한 발언의 일부다.
“내가 월급은 적지만 기자님들하고 소폭(소주 폭탄주) 한잔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이제 소폭 정도 마실 건데 자꾸 일이 커져서 문제다.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적 문화, 이런 게 결국 오늘처럼 이런 불행한 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기자들도 너무 매도하지 말고 따뜻한 눈길로 격려해주길 바란다. (스폰서 검사로 지목된 이들이) 내가 다 사랑하는 후배고 제자다. 나로부터 직접 강의는 안 들었더라도 내 책 논문을 봤을 테니 제자뻘되는 사람들이다. 나도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번 사건을 기회로 한국에 만연해 있는 온정주의적 문화가 좀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에서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사안임에도 이를 ‘온정주의’라고 표현해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진상규명위원회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불 보듯 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조사라는 것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돼야 된다는 점에서 봤을 때 제자들이니까 이렇게 봐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그런 불필요한 비판의 소지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성 교수의 자질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친분을 나타내려는) 취지가 아니었다”며 “그 점 때문에 진상조사위원회를 맡는 것이 가슴 아프고 무겁다고 말한 건데, 이 말은 빼버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성 교수의 자질 논란이 불거진 와중에 <일요신문>은 성 교수의 온정주의가 드러난 또 다른 사건을 확인했다. 성 교수의 친형인 성 아무개 씨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성 씨는 지난 2000년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 성 씨는 2002년 대선 최대 이슈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80억 수수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구속됐다. 당시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인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 씨는 기양건설의 어음을 할인해 주고 그 과정에서 8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성 씨는 배임수재 혐의로 1심에서 추징금 8억 원에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대선이 다가오며 다시 한번 이슈화가 됐고 2002년 재조사가 이뤄졌다.
성 교수는 친형인 성 씨가 검찰 수사를 받자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대 출신 검사들을 찾아가 선처를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수사를 진행했던 아무개 검사 역시 현재 진상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검찰 구형이나 법원 선고 결과 등을 보면 성 교수의 호소는 먹혀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현 검찰 고위 간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건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이 법대 교수로 있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수사 과정이나 구형 등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당시 수사 검사는 “대선과 연관되어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만큼 외부 입김에 영향을 받을 사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친인척이 수사를 받을 때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접근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다분하다. 특히 진상규명위원들의 역할이 ‘스폰서 검사’ 논란에 휩싸인 전·현직 검사들의 범법행위를 파헤치는 것과 동시에 도덕적인 잣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위원들도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성 교수의 해명을 듣기 위해 서울대 법대 측에 수 차례 연락했으나 성 교수 측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성 교수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총 5건 10편이 이중 게재됐다는 의혹과 함께 논문을 중복 게재해 연구비를 부정 수령했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이처럼 성 교수의 자질과 관련한 논란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벌써부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각종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 스스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4월 30일 정 씨를 불러 진정서 작성 배경 및 진정서에 적힌 접대장소와 시기, 검사들의 명단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했다. 정 씨는 전날 7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이날 조사에서도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으며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은 또 정 씨가 지난 2002년 이후 5차례나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던 점에 비춰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가 특정돼 현재 진정인 신분이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성 교수는 자질 시비 등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도덕성 논란을 불식시키고 ‘스폰서 검사’ 폭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특검제 법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정치권의 특검제 도입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그의 활동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