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인천. 감기에 걸린 거지가 한약방에 찾아와 약을 달라고 사정하자 주인 이경봉은 이렇게 말했다. 거지들은 병이 낫자 각설이타령을 개사해 제생당한약방이 최고라고 노래를 불렀다. 이후 이경봉은 “기왕이면 깃발도 들고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시오”라면서 거지들에게 제생당한약방 깃발을 만들어주었다. 여러 날이 지나자 제생당한약방에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근 출간한 이수광 작가의 <상인열전>(진명출판사) ‘약장수 CEO 이경봉’에 나오는 이야기다. 1900년대를 전후해 조선팔도를 휩쓴 청심보명단을 제조·판매했던 제생당한약방 주인 이경봉은 이렇듯 남다른 홍보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돈 벌기는 장사만한 게 없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부자가 되기는커녕 종자돈까지 날리기 십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수광 작가는 <상인열전>에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최근까지, 맨 밑바닥에서 시작해 당대를 뒤흔드는 부를 일군 장사꾼 20명의 이야기 속에서 성공의 비밀을 찾아간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만나 보부상 조직을 만들고 조선 경제를 이끌게 됐던 보부상 CEO 백달원, 비천한 기녀에서 벗어나 조선 최고의 거상이 된 기생 CEO 김만덕, 사람을 구해 부귀를 누린 역관 CEO 홍순원 등 보통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물에서부터 두산그룹 창업주 박승직, 현대그룹 ‘왕회장’ 정주영 등 누구나 알 만한 거상의 성공 스토리가 <상인열전>에 담겨있다.
이들의 삶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면서 작가가 터득한 장사의 기술·비결은 간단명료하다. 목숨을 걸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김두원이라는 장사꾼이 가장 좋은 예다. 그는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점쟁이에게 돈을 주고 ‘10년 안에 부자가 되지 않으면 목숨을 끊는다’는 뜻의 십년지한불부단명(十年之限不富斷命)을 써 받아 방에 붙였다. 이후 그는 소금으로 큰돈을 거머쥐어 ‘소금왕’으로 불렸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이 장사를 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역설하는 이수광 작가는 지난 2006년 7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일요신문>에 소설 ‘블랙마리아’ ‘조선왕조실록’을 연재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