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도 11공구 보상과 관련 문제가 되고 있는 5톤 미만 소형선박 선외기 모습. |
지난 2006년 송도 1~2공구 매립 당시 인근 해역에서 조개를 따던 어민들은 피해보상으로 1가구당 165㎡(50평)의 땅(일명 ‘조개딱지’)을 제공받았다. 당시 2500만 원에 불과하던 ‘조개딱지’가 10억 원을 호가하게 되자 검은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송도 11공구 매립 승인이 떨어지면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던 어민들에게 ‘배딱지’가 주어질 것이란 소문을 퍼뜨려 소형어선 거래를 부추겼다. 소형선박 가격은 치솟았고, 조업에 어려움을 겪던 어민들 대부분이 투기꾼들에게 소형어선 소유권을 넘기고 말았다. 게다가 투기꾼들이 합심해 폐업보상으로 ‘땅’을 요구하는 바람에 송도 11공구 개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배딱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인천 앞바다 투기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갈매기, 갓 잡은 생선을 사고파는 어민들로 시끌벅적한 인천 수협 공판장 앞으로 대형고급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얼굴엔 선글라스, 옆구리엔 명품 백을 낀 이들이 차에서 내린다. 수협 사무실 내부는 낯선 도시냄새로 가득 찼다. 과연 강남 아줌마들이 단체로 인천 앞바다에 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송도국제도시 개발은 2003년을 기점으로 3단계(총 11개의 구역)에 걸쳐 진행돼왔다. 각종 연구 및 교육기관, 바이오단지, 물류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송도는 차츰 국제비즈니스 센터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첨단산업단지 완성을 위해 ‘11공구’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만 남겨두고 있다.
‘송도 11공구’는 송도국제도시 개발이 한창인 지난 2006년부터 계속 논란이 돼 온 곳이다. 2006년 송도해상 1~2공구 해역에서 맨손어업을 하던 어민들은 어업권 피해 보상으로 1가구당 준주거용지 165㎡(50평)를 제공받았다. 사업초기 2500만 원에 불과하던 ‘조개딱지’ 시세는 불과 1~2년 만에 1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조개딱지’처럼 인천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소형선박들에 ‘배딱지’가 제공된다는 소문이 돌자 타 지역에서 소래, 월곶 등지로 몰려든 10톤 미만 소형선박이 자그마치 250여 척에 이르렀다. 송도 11공구 매립 시 피해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꼽히는 지역이 바로 소래, 월곶이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은 ‘배딱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해 투기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1척당 2000만~4000만 원 하던 소형선박이 1억 2000만~1억 5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들은 송도와 인천 지역 일대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공무원 및 강남 지역 투자자들을 소개받아 선박 매입을 알선했다. 그중 일부는 매입한 선박을 5배 이상의 권리금을 받고 거래하는 등 불법 투기에도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 바다에 버려진 ‘재테크 선박’. |
현행법은 5톤 미만의 소형 선박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투자자들이 소형선박을 투기 목적으로 삼을 수 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4일 기자와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C 씨는 “선박을 팔아 넘긴 어민들의 대부분이 외부 투자자들에게 고용돼 월 250만~300만 원의 관리비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면서 “투기꾼들이 1차 산업인 수산업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어민들을 피고용인으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혼자서 소형선박 몇 10여 척을 사들인 어떤 선주는 선박 관리에 어려움이 따르자 어획량이나 어업 활동 횟수를 조작했다가 교도소에 간 적도 있다”고 성토했다.
같은 날 기자와 만난 어민 D 씨는 “현재 소형선박의 대부분이 외지인들 손에 넘어가 ‘재테크 선박’으로 변모했다. 어떤 지역은 ‘재테크 선박’이 90%에 달한다”면서 “보상을 받기 위해선 ‘60일 이상 조업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3월쯤 실사가 끝나자 투기꾼들 대부분이 소형선박을 바다에 그대로 방치시켜 버렸다. 그중 일부 선박은 바다에 잠긴 모습도 보였는데 이 경우 엔진 내부의 기름이 바다를 오염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소래, 월곶, 오이도 인근 소형 선박의 거래는 예년만큼 활발하지 않다. 4일 기자와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E 씨는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보상 여부도 명확히 결정된 바 없어서인지 소형선박 거래가 요즘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팔려고 내놓은 선박은 꽤 있는데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5~6월 중으로 송도 11공구 매립 승인이 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보상을 받기 위한 선주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지고 있다. 어민 D 씨는 “‘재테크 선박’ 선주가 대부분인 어촌계는 땅을 전제로 폐업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어촌계들은 각 기관에 탄원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순수 어민들로 구성된 어촌계는 생존권을 근거로 매립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생계 보상이 뒤따른다면 정부 개발 정책을 위해 한걸음 물러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면서 “투자자들은 애초에 어업에 관심이 없던 자들이기 때문에 폐업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손실보상의 경우 현금 보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어업권에 관한 보상은 이에 준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생계를 잃은 어민들은 ‘조개딱지’ 사례처럼 땅을 지급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다.
5월 6일 기자와 통화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보상팀 관계자는 “각 지역 어민이 받은 피해율을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보상을 진행하기 위해 현재 전문 보상기관과 위탁을 맺어 조사하는 단계다. 조사가 끝난 후에야 보상이 현금으로 이뤄질지 땅으로 이뤄질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