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락 경찰청장(왼쪽)과 김준규 검찰총장. 검-경 간에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경찰 측에서는 시점이 지난 사건을 검찰이 다시 끄집어내 수사하고 있는 배경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찰은 최근 검찰이 기소독점권 논란 등에 휩싸이자 경찰의 최대 숙원 과제인 ‘수사권 독립’ 등을 재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관의 뇌물 수수 사건에 검찰과 경찰이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는 내막을 쫓아가 봤다.
2007년 6월경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던 유 아무개 씨는 사업가 김 아무개 씨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김 씨가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모 업체 대표이사 등 7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고소를 했는데 이 사건을 빠른 시일 내에 기소 의견을 내 검찰 측에 송치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김 씨는 부탁과 함께 유 씨를 강남 지역 모 유흥업소에서 향응을 제공하는가 하면 3회에 걸쳐 총 3000만 원의 돈을 건넸다.
경찰대를 나온 유 씨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경찰이었다. 지난 3년간 유 씨는 어청수 전 경찰청장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어 전 청장 퇴임 후에는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 중이었다. 경찰 조직 특성상 청와대에 파견 근무를 갔다가 복귀하면 1계급 특진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3년 전 사건이 유 씨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 4월 유 씨가 연루된 사건 내용을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인천지검 특수부는 유 씨에 대한 체포 영장 및 계좌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유 씨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자 유 씨는 지난 5월 2일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유 씨는 처음 조사에서는 “김 씨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한 번 정도 술을 마신 사실이 있는 것 같다” “사건 청탁이나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유 씨와 김 씨를 2회에 걸쳐 대질 신문했고, 그 결과 유 씨는 진술을 변경해 “자주 술을 마신 적은 있었으며 사건 청탁을 통상적인 수준에서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 씨는 대질 과정에서 김 씨를 ‘○○야’라고 부르는 등 친밀감도 표시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면서 조만간 검찰은 유 씨를 기소할 방침이다. 유 씨는 검찰수사가 진행되자 청와대에서 경찰청 정보국으로 원대 복귀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한 경찰의 단순 뇌물 수수 사건으로 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유 씨와 관련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간에 미묘한 파장을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측에서는 검찰 수사의 이면에는 검·경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경찰을 압박하기 위한 ‘노림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경찰은 최근 검찰이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수사권 독립을 재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도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꼽고 있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오랜 숙원이다. 반대로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정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면서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으나 검찰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경찰 수사권 독립 얘기는 거론되지 않고 있으나 경찰 내부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경찰은 최근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다는 점을 호기로 삼아 정부부처의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권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검찰 부패의 핵심 원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경찰의 이런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이처럼 수사권 독립을 놓고 검·경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유 씨의 뇌물수수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당혹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특히 유 씨가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에다 전직 경찰청장 비서실장을 거쳐 현재는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에 파견 나가 있는 경찰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유 씨가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경찰은 적잖은 도덕적 상처를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김 씨와 관련해서 이미 지난 1월 계좌추적 등을 통해 국세청 직원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며 “당시 계좌 추적 과정에서 유 씨와 관련된 내용도 어느 정도 인지했을 텐데 왜 지금 와서 사건을 수사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인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찰의 수사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경찰은 유 씨 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검찰 측에서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결국 검찰 측에서 ‘너희도 부패한 건 마찬가지인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냐’는 메시지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다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혐의가 있으면 신분을 막론하고 수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경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사건에 검·경 수사권 독립을 연관시키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현재 검찰은 유 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한 경찰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검·경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파워게임으로 확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