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박지성 축구센터 기공식에 참석한 박성종 씨와 박지성. |
#Dream
“집 바로 옆에 학교 운동장이 있었어요. 주말 동안 축구부에 가지 않을 때는 지성이랑 공을 들고 그 운동장에서 같이 연습을 했습니다. 아내가 골키퍼를 보고 저랑 지성이랑 공 다툼을 벌이며 서로 골을 넣겠다고 애를 쓰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그때부터 지성이가 축구선수로 성공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에서 배운 걸 그대로 연습해가며 저한테 써 먹더라고요. 그때 ‘내 아들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박 씨는 아들이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진정한 선수가 되길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들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시작했다고 한다. 워낙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이라 3000만 원의 전셋집에서 아들 한 명 운동시키는 데 2000만 원의 빚을 안고 살았지만 그조차 감수해야 했다는 부정을 내보인다.
#Chance
“지성이의 학교 진학 문제와 관련해서는 매번 갈등과 번민이 뒤따랐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일본, 네덜란드, 맨체스터유나이티드까지, 단 한 번도 쉽게 진로를 결정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신기한 건,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사실 어린 시절의 지성이 진로는 제가 결정했지만 일본 진출 이후부터는 지성이가 선택했습니다. 제 선택이든 아들의 선택이든 그 기회를 제대로 잡아갔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죠.”
지금이야 편하게 지난 날을 회상하지만 박 씨는 그 선택들이 당시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학교 이름보다 환경을 먼저 헤아렸고 프로팀 입단이 어려워질 것 같아 J리그로 방향을 튼 것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PSV에인트호벤 히딩크 감독과 ‘아름다운 이별’을 원했던 박지성과 제자를 쉽게 놓지 못했던 스승의 복잡한 계산, 또한 누구도 믿지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등 박지성의 축구 인생과 궤를 함께해온 박 씨는 그 드라마틱한 과정들 속에서 좋은 기회를 잡은 부분에 대해 또 다시 감사함을 나타낸다.
#Ability
“전 지금도 지성이가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축구선수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많아요. 만약 지성이가 정말 뛰어난 스타플레이어였다면 퍼거슨 감독이 종종 벤치에 앉혀두진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게 지성이의 전부일 수도 있어요. 지성이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 저 또한 제 아들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잘 인지하고 있고요. 한국에서야 최고의 축구선수 박지성이지만, 세계무대에선 그리 최고의 축구선수가 못 된다는 사실, 우리 부자는 잘 알고 있죠.”
#Passion
“맨유 입단 후 두 번째 부상을 당했을 때였어요. 한국에 있는 저한테 지성이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아빠, 의사가 더 이상 선수 생활을 못할 수도 있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어요. 무슨 정신으로 미국 콜로라도까지 날아갔는지 몰라요. 영국에서 바로 콜로라도로 건너온 지성이와 병실에서 만났는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마취에서 막 깨어난 지성이 얼굴을 보니까, 선수 생활 지속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살아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지성은 유독 무릎 부상과 악연이 많다. 네덜란드, 맨체스터에서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랐고 그때마다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런 재활 훈련을 소화해냈다. 이럴 때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건 선수 혼자 감당해 가야 한다. 선수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대에 오른 박지성,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 어떠한 위기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 두 부자한테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Global Standard
“만약 지성이가 유럽에 뛰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떤 선수가 되었을까요? 그저 평범한 축구선수이거나 조기에 은퇴한 선수로 전락했을지도 몰라요. 유럽에서 축구 선수로 생활하면서 지성이의 시야도, 또 제가 지성이를 보는 시야도 두 뼘 이상은 넓어졌을 겁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지성이는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 외국 생활을 하면서 지성이는 단순히 축구선수로 끝나는 인생보다는 자신이 받은 많은 부와 사랑을 세계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박지성은 은퇴 전에 꼭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다. 오는 7월 준공되는 박지성 축구센터가 한국 유소년축구에 작은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동남아시아 중국 동티모르 등 축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가난한 나라를 자비로 방문해 자선 축구 경기도 열고 축구 클리닉 등을 개최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한다. 현역 선수로 뛸 때 이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박지성의 에이전트사인 JS리미티드에선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지성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고맙고 감사할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굴레를 만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 아들의 축구인생을 함께 공유한 부분이 저한테는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책이 운동을 가르치는 부모님이나 음악, 공부 등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들께 읽을거리 정도 된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