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 회장 취임 시기인 2009년 의협 내부감사 자료 사본. |
의협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워 단체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적지 않았다. 의협 회장 선거 때는 파벌로 인한 갈등이 노출됐고 협회 자금을 둘러싼 비리와 구설수도 끊이질 않았다.
특히 지난 5월 17일에는 전국의사총연합(전의연) 노환규 대표를 비롯한 341명의 의협 회원들이 경만호 의협 회장을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내부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의연 측은 경만호 회장이 2009년 4월 취임한 후부터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연구용역비 및 법인카드를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챙겨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 회장은 자신을 회장직에서 끌어내리려는 반대 세력들의 음해라고 맞서고 있다.
단순한 내부 갈등을 넘어 법정싸움으로 확전되고 있는 의협의 이전투구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경만호 회장은 올해 협회 자금관리 및 집행업무를 유용한 혐의로 회원 341명으로부터 고소당한 상태다. 그는 올해 초 연구비 1억 원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대의원회의에서 ‘일처리의 미숙함으로 여기고 본인이 반성하고 있으니 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면죄부를 받았다.
경 회장 관련 의혹 사건은 대의원회의 결정으로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전의연 측이 경 회장의 또 다른 비리 혐의를 잡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의협 내부 갈등은 외부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일요신문>은 경 회장 비리 의혹 및 의협 내부 갈등의 자세한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전의연 측이 제출한 고소장 내용을 확인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경 회장은 협회의 자금을 연구용역과 법인카드를 이용해 수차례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의협의 경우 소속 회원들에게 매달 3만 원을 수령해 기금을 조성한다. 회원수가 10만 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액수다. 이 금액은 국내 의료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연구 지원비로 쓰이게 된다. 고소장에 기록된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 회장은 협회의 연구용역비 및 법인카드를 협회의 공적인 목적이 아닌 자신의 사적 이익을 취하는 데 사용한 셈이다.
연구 용역비의 경우 공모과정을 거치지 않고 연구과제를 채택, 연구용역비를 지급한 후 자신의 계좌로 해당 금액을 다시 송금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법인카드의 경우는 의학과는 무관한 모 공과대학 총장에게 법인카드를 빌려준 후 2009년 6월경부터 2010년 3월경까지 매월 약 300만 원씩 합계 약 3000만 원을 사용하게 한 뒤 그 대금을 의협자금으로 변제한 의혹을 받고 있다.
연구용역의 경우 의료정책연구소의 규정상 연구비는 연구용역과제 계약 체결시 총 계약금의 70%를 지불하고 최종연구물 제출시 나머지 30%를 지불하기로 규정돼 있다. 또한 연구과제를 결정함에 있어 공모절차 등을 거쳐 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경 회장은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임의로 연구용역을 체결하고 용역비를 지출해 협회 재정을 탕진한 의혹도 받고 있다.
▲ 지난달 열린 한국의료살리기 전국 의사대표자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는 경만호 회장. 연합뉴스 |
<일요신문>은 고소장에 적시된 경 회장의 혐의 내용을 뒷받침해 줄 2009년 감사자료를 입수해 보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봤다. 모 회계법인에서 실시한 감사결과서에는 “2008년까지의 연구과제는 모두 공모절차를 준수해 채택됐다. 하지만 2009년 26개 연구과제 중 실제 공모가 이루어진 것은 6개에 불과하다. 공모가 진행된 것 중에서도 1억 원 이상의 연구 용역과제 세 가지는 계약이 체결된 이후인 2009년 11월 23일에 이뤄졌다”고 적시돼 있었다. 경 회장의 혐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보고서 내용이다.
6월 1일 기자와 만난 노환규 대표는 “검찰에 고소하기 전부터 협회에 대한 자체 조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의협 내부 감사자료가 밖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배후로 나를 지목하면서 정확히 조사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협회 자금을 횡령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의협의 의사결정이 상당히 비민주적으로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며 “권력화 된 의협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전의연 측의 고소 내용과 관련해 경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의협 등 다방면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 회장과 직접 통화는 할 수 없었고 대신 비서를 통해 그의 입장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6월 3일 기자와 통화한 경 회장의 비서는 “이번 사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회원들에게 메일로 전송해 해명한 것이 전부이고, 노환규 대표 측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내용은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고 말했다.
기자는 경 회장의 공식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메일을 살펴봤다. 경 회장은 메일을 통해 “제보의 배후에는 ‘경만호 퇴진’이라는 목적 아래 이합집산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회원을 부추긴 어떤 집단이 있다”며 “언론을 동원하고 고소 고발과 각종 음해, 유언비어를 날조해 나를 스스로 나가게 해야 한다는 세력들이 있다”며 회원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또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서라면 협회에 똥물을 뒤집어 씌워서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워 집단인 의협의 이전투구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