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
사회적인 여건 때문에, 혹은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여전히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 직장인들이 상당수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닌 H 씨(여·28)는 얼마 전 대기업 계열 외식업체에 입사했다. 그는 2년간의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 근처의 원룸으로 이사하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나 조교를 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얼마간 저축도 했어요. 그런데 입사 후에도 고시원에 살자니 좀 힘들더라고요. 고시원이 몰려 있는 지역의 미니 원룸인데 회사에서도 멀고 여자 혼자 살자니 불안하기도 했죠. 그래서 작지만 안전한 지역의 원룸을 얻으려고 하니 지금 월급으로는 힘들더군요. 보증금을 낮추니까 월세가 턱없이 비싸졌어요. 할 수 없이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서른이 코앞이지만 결혼 전까지 부모님 도움 없이는 힘들 것 같아요.”
결혼을 앞둔 K 씨(32)의 경우 결혼자금 문제로 형제들과 갈등을 빚었다. 해외에서 대학원을 나온 그는 관광업 계열의 회사에 취업해 연봉이 낮은 편도 아니지만 신혼집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부모에게 다시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어려운 형편에 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게 된 것도 고맙긴 하지만 당장 급하니까 손 벌릴 곳은 부모님밖에 없더군요. 부모님은 현재 살고 있는 집 규모를 줄여서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으신 것 같은데 이 때문에 동생들하고 충돌이 있었어요. 장남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도 고민이 많지만 신혼을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 시작하기는 어렵고 결국 지원을 받을 것 같은데 부모님은 물론이고 다른 가족들한테도 미안하고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H 씨나 K 씨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향후 기반을 잡으면 돌려드릴 생각이란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몇몇 직장인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중소기업 사무직인 L 씨(여·26)는 통신비 등 고정비용을 부모가 대신 내주고 있다. 그는 주택자금 같은 큰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의식이 저도 모르게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부모님과 계속 한집에 살다 보니까 취업을 했어도 부수입이 더 생긴 것 같지,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게 되네요. 휴대폰이나 인터넷 비용 같은 건 학생 때부터 부모님 통장에서 자동이체되고 있는데요, 취업 후에도 변화 없이 계속 부모님이 내고 계세요. 슬쩍 저보고 내라는 뜻을 비치긴 하셨는데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대놓고 요구하지 않으셔서 조용히 있는 상황이죠. 사실 제가 자취하는 사람들보다 유리하다고는 생각해요. 통신비용만 해도 10만 원을 훌쩍 넘는데, 각종 세금이나 월세 등을 제가 내면 지금 누리는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꾸죠. 아직은 생활비를 보태진 않는데 그래도 연봉이 오르면 엄마한테 생활비를 좀 보탤 생각이긴 해요.”
의류회사에 근무하는 S 씨(28)도 지난해와 올해 큰 건으로 지원을 받았었다고 고백했다. 입사 초기였던 지난해는 휴가철 여행경비를, 올해는 치아 교정비용까지 부모님이 지원해 줬단다.
“지난해는 입사 초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모아놓은 돈이 없었죠. 부모님도 다 아시는 동네 친구 모임이 있는데 휴가 일정을 맞춰 미국 여행을 가게 됐어요. 근데 저만 돈이 없다고 빠질 순 없잖아요. 월급 모은 게 얼마간 있었지만 부모님이 비행기 요금을 보태주셨습니다. 죄송하긴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도 조금씩 다 지원을 받았더라고요. 올해는 큰 맘 먹고 치아 교정 치료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성형치료까지 하는데 그것도 일부 도와주셨고요.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결혼 전까진 독립이 힘들 것 같아요.”
부모의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캥거루족 직장인들은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도움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어도 완전히 자립하지 못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결혼 2년차인 C 씨(여·31)는 남편의 투자 실패로 매달 친정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며 속상해 했다.
“제가 여전히 일하고 있지만 양쪽이 벌어도 매달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되네요. 남편이 증권회사에 다니는데 개인적으로 투자받은 돈을 갖고 펀드를 하다가 큰 손해를 봤어요. 생활비 보험료 집세 등 고정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여전한데 둘 다 월급은 빤하고 카드 돌려막기에 현금서비스까지 해도 30만~40만 원씩 급하게 막을 상황이 생겨요. 그럴 때는 양쪽 부모님께 체면불구하고 연락해요. 당장 급할 때는 부모님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소비를 줄이려도 해도 쉽지 않고요. 남편도 툭하면 수십만 원씩 후배들 술값을 내고 저도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카드부터 꺼내 긁은 뒤 꼭 후회를 하게 돼요. 서른 중반 전에는 정말 자립해야죠.”
얼마 전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4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약 20%가 ‘취업 후에도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월급이 적거나 주택자금이 너무 비싸거나 일정 목표액을 만들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을 받고 있단다. 하지만 이들 응답자의 70%에 가까운 직장인들은 이러한 부모의 지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