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검사와 스폰서’ 기획안. |
검찰은 <PD수첩> 방영 이후 민간위원을 주축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의혹을 약 40일간 조사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민간위원이 주축이 됐다 하더라도 현직 검찰 고위직들이 관련된 사건인 데다 진상규명위원들 역시 법조계 인맥으로 얽혀 있어서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요신문> 역시 진상규명위원장이었던 서울대 성낙인 교수가 몇 년 전 친형 성 아무개 씨의 검찰 수사 당시 구설에 오른 바 있다(938호 보도)며 자질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9일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일부 검사들에 대해서만 징계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 ‘면죄부 조사’라며 위원회의 조사 발표를 성토했다.
결국 <PD수첩> 방영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특검’ 도입 주장이 힘을 얻게 됐고, 여야는 지난 16일 특검 도입에 전격 합의했다. 그렇다면 특검은 과연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해소하지 못한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을까.
먼저 기본적인 수사 대상은 진상규명위원회와 다르지 않다. <PD수첩>에서 거론된 박기준, 한승철 두 검사장과 건설업자 정 아무개 씨가 접대했다고 주장한 전·현직 검사 100여 명 등이 수사 대상이다. ‘성접대’의 경우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2009년 접대 검사들이 주로 수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 6월 8일 <PD수첩>에서 추가로 보도한 검찰 수사관들의 성접대 의혹도 추가 수사 대상으로 올라 있다. 무엇보다 특검 수사의 초점은 검사 접대 사실을 제보한 정 씨와 검사들 사이의 대질 조사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는 정 씨가 특검 조사에만 응하겠다며 대질 조사를 거부해 성접대 여부나 접대의 대가성을 밝히기가 어려웠었다. 성낙인 위원장도 특검에서 정 씨와 검사를 대질 조사할 경우 향응 접대와 관련한 진전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특검의 활동이 여기에 그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국민들은 특검이 단순히 <PD수첩>을 통해 폭로된 내용뿐만 아니라 검사와 스폰서 간의 관행적인 부패 고리를 끊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특검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수사한다면 파장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8일에 방영된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2탄에는 취재 단계에서 몇몇 검찰 현직 유력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PD수첩>은 이 내용들에 대해서는 방영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현직 검찰 고위 간부 및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관련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검찰에서도 관련 내용을 이미 확보한 상태고, 이러한 내용들이 공개될 경우 검찰 조직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게 될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경우 검찰은 물론이고 관련 대기업에도 메가톤급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요신문>이 정 씨를 통해 입수한 문건에 거론된 검찰 출신 거물급 인사 10여 명에 대해서도 특검 수사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은 937호에서 정 씨 문건에 현직 법무부 최고위층인 A 씨를 비롯해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등을 역임한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법무부 고위직을 역임한 B 씨와 고검장 출신인 C 씨, 대검 고위직 출신인 D 씨,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역임한 E 씨 등은 검찰총장 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다 검찰을 떠난 거물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만약 특검을 통해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검사 스폰서’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검찰 자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은 ‘제대로 된’ 특검 수사가 이뤄질 때 가능한 일이다. 특검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나 현재 여야의 움직임을 보면 위와 같은 근본적인 수사가 불가능할 것이란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스폰서 검사’ 의혹에 대해 여야가 합의해 도입하기로 한 특검은 기본적으로 공소 제기가 가능한 사안들로 한정돼 있다. 형법에 따르면 수뢰액이 3000만 원 미만인 경우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고, 그 공소시효는 7년이다. 또 수뢰액이 3000만 원 이상, 5000만 원 미만인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2000년 이전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처벌이 아예 불가능하고 2003년 이후 혐의에 대해서는 뇌물 액수가 3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는 셈이다.
성 접대 의혹 역시 2003년 이전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관련 법 규정이 없어 처벌이 불가능하고 2004년 이후 성 매수사범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1년이어서 결국 지난해 성 접대 의혹에 대해서만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 여야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 역시 특검 도입 얘기가 처음 나왔던 5월 초와는 달리 상당히 태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8일 방영된 <PD수첩>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1탄 때와 달리 시큰둥했고, 부담되는 부분들이 여야 합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 빠졌다는 것도 검찰이 특검 도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찝찝했던 부분들을 이번 기회에 털어버리고 가자는 것이 수뇌부의 의지”라며 “오히려 특검을 도입하기로 한 게 더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는 미흡하다는 취지 아래 도입된 특검이 과연 검찰의 관행화된 부패 고리를 철저히 밝혀낼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어째 갈수록 맹탕이네…
그러나 특검이 도입 초기와는 달리 갈수록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검 무용론’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특검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기서 비롯된다.
특검이 처음 활약한 것은 지난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사건 때다. 당시 특검팀은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단독 범행이라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한 바 있다. ‘옷로비’ 특검팀도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구명을 위해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검찰 간부에 로비를 시도하려 했던 정황을 포착했다.
두 번째 특검은 2001년 11월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위해 구성돼 이용호 G&C그룹 회장의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와 정·관계 로비의혹을 집중 수사했다. 당시 특검팀은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 씨와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을 줄줄이 구속하는 성과물을 내놨다.
그러나 이후 도입된 특검은 사실상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가장 최근에 도입됐던 이른바 ‘삼성 특검’이다. ‘삼성 특검팀’은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조성, 불법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등의 의혹을 수사해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으나 삼성그룹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지난 2007년 대선 기간에 제기됐던 이명박 대선 후보의 BBK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도입된 특검팀은 이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내려 ‘특검 무용론’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