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강원도 철원 군부대 포사격장에서 이동신문고를 운영 중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소음대책 보상요구 민원회의에서 주민들과 군부대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사실 이재오 위원장은 오랜 기간 정계복귀 시기를 저울질해온 상황. 지난 18대 총선 패배 뒤 정계를 떠났던 그는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 ‘수장’으로 공직에 되돌아왔다. 지난해엔 10월 재보선 출마설도 나돌았지만 결국 이 지역이 재보선 지역에서 제외되면서 이 위원장은 권익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훗날’을 도모해왔다.
그런데 정계복귀 소문이 돌 때마다 말을 아끼던 그는 최근 7·28 재보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이전과는 달라진 적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이재오 위원장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 구도도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재오 위원장의 정계 복귀가 이번에는 성사될 수 있을까.
6·2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정가의 시선이 차츰 7·28 재·보궐 선거로 모아지고 있다. 전국 8개 지역에서 실시되는 재보선 지역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이재오 위원장의 출마 가능성이 높은 서울 은평 을. 이 지역은 이재오 위원장 외에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설도 나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의 최대 빅 매치 지역으로 일찌감치 거론돼온 곳이다.
이재오 위원장의 출마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조짐은 지방선거 이전부터 감지되었다. 한나라당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오 위원장이 그간 진수희 의원 등 측근들과 재보선 및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두고 논의를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 결정은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패배였던 지방선거 이후 당내 친이 주자들의 입지가 상당히 위축됐다. 이재오 위원장의 복귀를 바라고 있던 친이계 내에서 이재오 위원장에 대한 러브콜이 강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책임론’의 한가운데 선 친이 주자들은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친이계 내에서는 “당내 소장파들의 쇄신 요구 목소리에 대응할 수 있는 친이계의 힘이 약해졌다”는 위기감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친박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혔음에도, 일부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당 대표를 맡아 달라’며 친박계의 입지 강화를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 전문가들은 지방선거 이후의 이러한 한나라당 내의 변화된 상황이 이재오 위원장을 ‘움직이게 할’ 가능성을 높였다고 분석한다. 한 친이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이전보다 이재오 위원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친이계 내에는) 현재 구심점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위원장의 ‘지역구’인 은평 을 지역의 민심은 과연 어떤 흐름을 보이고 있을까.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만을 살펴보면, 은평 을은 민주당의 우세 지역으로 분석된다. 은평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우영 후보가 54.16%를 얻어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40.83%)를 13.4%포인트 앞섰고, 서울시장 선거 득표율에서도 은평구에선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5.2%포인트 앞섰다.
이번 지방선거에 표출된 민심으로는 이재오 위원장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지방선거의 민심이 7월 재보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중립성향의 한 선거 전문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 지역 구청장 25곳 중 21곳이나 차지했다. 지방선거 민심은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과거 지방선거의 경우 은평 을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지방선거에서의 여론이 재보선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4회와 3회 지방선거에서 은평 을 구청장은 한나라당 후보가 모두 당선된 바 있다.
이재오 위원장이 이번에 재보선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지역 민심의 흐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은평 을에서 15~17대까지 내리 3선을 지낸 바 있는 이 위원장은 지역 민심을 누구보다 잘 꿰고 있다고 자평한다. 비록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패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지역구 관리’를 해오며 재기를 노려왔던 그다. 이 위원장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도 그동안 꾸준히 평소 즐기던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통해 지역민들과 접촉해 오기도 했다.
이재오 위원장이 재보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경우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대응도 관심사다. 박 전 대표 역시 전당대회 불참 입장을 밝히며 이재오 위원장과의 ‘직접 충돌’은 피하게 되었지만, 박 전 대표가 이 위원장의 정계복귀에 대해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일부 친박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재오 위원장은 친이 대 친박 대립구도를 치닫게 했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이에 대한 아무런 사과 없이 당선을 도울 수는 없다”는 반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1일 재보선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한 한나라당은 은평 을 지역을 지방선거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최대 전략지역으로 평가하며 ‘반드시 당선 가능한 인물을 내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재보선이 열리는 지역 중 강원 원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민주당이 우세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어 한나라당으로서는 은평 을을 탈환할 경우 다른 곳에서 지더라도 ‘상징적 의미’가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연 이재오 위원장이 이번 재보선을 통해 2년여의 ‘휴지기’를 접고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을까. 조만간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전해지는 이재오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민권익위원회의 ‘이동신문고’ 개최를 위해 경기도 연천을 찾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묵묵히 돌파해 나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재오 위원장의 복귀가 성사될 경우 이는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주자 경쟁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재보선을 바라보는 박근혜 전 대표의 심경이 편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텃밭공략vs인지도 ‘대충돌’
은평 을 지역에 이재오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야권의 어떤 후보와 경쟁을 펼치게 될까. 이미 민주당에서는 장상 전 총리가 지난 3월 출마선언을 했고 정대철 상임고문, 김근태 전 의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외에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 국민참여당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 등도 야권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 여부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 18대 총선에서 낙마한 뒤 정계를 떠난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손학규 전 대표는 종로에 출마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패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후 이재오 위원장은 미국 ‘유학’ 뒤 지난해 9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고, 손학규 전 대표는 춘천 칩거생활을 계속해오면서 지난해 10월 재보선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유세를 도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만약 두 거물의 출마가 성사된다면 둘 중 어느 한 편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평한다. “은평 을에서 내리 3선을 하며 터를 닦아온 이재오 위원장은 지역 민심에 훤하다는 유리한 점을 안고 있지만, 그가 지닌 ‘4대강 전도사’ 이미지가 지방선거에서의 정권견제심리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손학규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는 이재오 위원장에 비해 호감도와 인지도가 높지만 은평 을 지역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두 주자가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인 만큼 이들의 빅 매치가 성사될 경우 그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 정치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락 여부에 따라 둘 중 한 명의 ‘복귀 시점’은 더 멀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