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대표 경선 판도를 뒤흔들 ‘키플레이어’ 손학규 전 대표. |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2010년 8월 하순 열릴 민주당 전대도 이처럼 ‘세력 대결’이 될 것인가.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 당대표 경선 판도를 뒤흔들 중요한 ‘키플레이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 후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갖겠다”며 정치권을 떠났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바로 그 키플레이어다. 손 전 대표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의 출전 여부에 따라 이번 당대표 경선이 ‘세력 대결’이 될 수도, ‘인물 대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손 전 대표가 당권 경쟁에서 빠질 경우 민주당 당대표 경선은 철저히 당내 세력 간 혈투의 양상을 띨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주된 관측이다. 그 혈투의 중심에는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의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직까지 전대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결국 당대표 자리를 놓고 맞붙을 것이라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상을 깨고 6·2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정 대표는 한층 탄탄해진 당내 기반을 바탕으로 ‘장기 집권’에 도전할 전망이다. 정 의원도 최근 ‘한반도 평화’와 ‘역동적 복지’를 주축으로 한 ‘담대한 진보’를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는 등 전대 출마 쪽으로 한참 기울었다.
손 전 대표의 불출전은 정세균 대표를 ‘반정동영’(반정·反鄭) 세력의 중심에, 정동영 의원을 ‘반정세균’(반정·反丁) 세력의 중심에 세워놓을 것으로 보인다. 반정동영 세력에는 정 대표 개인의 조직기반뿐 아니라 손학규계, 김근태계, 486(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그룹, 친노그룹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들 그룹의 ‘정동영 비토’ 기류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어져 올 정도로 뿌리가 깊다. 손학규계가 김효석 의원을, 김근태계가 이인영 전 의원을 대표주자로 내세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들을 당대표 경선 주자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반정세균 세력에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 대표와 충돌해 온 ‘쇄신연대’가 있다. 당내 최대 계파로 분류되는 정동영계뿐 아니라 추미애, 박주선 의원을 비롯한 구민주계 일부, 천정배 그룹, 장세환, 최문순 의원 등 개혁 성향 의원들이 포진된 ‘국민모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추미애 등 당권에 도전하는 주자들이 많은 게 흠이지만 경선 구도가 ‘반정동영 대 반정세균’으로 가닥이 잡힐 경우 가장 경쟁력 있는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쇄신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원은 “2008년엔 ‘통합의 리더’로 보였던 정세균 대표가 완승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독선과 아집의 리더’로 보고 있다”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나리오와 달리 손학규 전 대표가 직접 당권 경쟁에 뛰어든다면 경선 판도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등 이른바 ‘빅(Big) 3’에 천정배, 추미애 등 대권주자들이 총출전할 경우 이번 당대표 경선이 2012년 대선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곧 이번 경선이 철저히 ‘인물 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며 기존의 계파질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현재까지는 정동영계가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한 가운데 손학규계, 친노그룹, 486그룹, 구민주계 등 고만고만한 세력이 할거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인물 대결로 세게 붙을 경우 전혀 새로운 세력 재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정세균 대표(왼쪽)와 정동영 의원. |
결국 ‘키’는 아직까지 여의도 정치에 복귀하지도 않은 손학규 전 대표가 쥐고 있는 셈이다. 그는 요즘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버린 ‘잠행’을 계속하면서 보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과연 손학규 전 대표는 언제까지 당내 정치의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손 전 대표의 주변에선 “뭔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해 온 손 전 대표가 최근 손학규계 의원 및 원외 지역위원장들과 회동하는가 하면 서울에도 자주 ‘출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 전 대표의 소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의 한 측근은 “춘천시 서울동”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경선에서 패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손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손 전 대표를 도왔던 한 486그룹 인사는 “손 전 대표로서는 대선을 2년 이상 남긴 시점에 벌써부터 굳이 당내 혈투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며 “‘큰 꿈’을 꾸고 있는 분인 만큼 어떤 선택이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전대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손 전 대표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손 전 대표의 손가락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할지에 당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