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평을 재보선에 출마 의사를 밝힌 이재오 전 위원장. |
은평 을은 일찌감치 이번 7·28 재보선의 가장 큰 관심지역으로 급부상했다. 바로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출마 가능성 때문이었다. 장고를 이어온 이재오 전 위원장은 마침내 지난 6월 30일 국민권익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은평 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18대 총선 낙마 이후 정계를 떠난 지 2년여 만에 ‘공식 복귀선언’을 한 것이다.
현재 은평 을은 이재오 전 위원장과 국민참여당 천호선 최고위원이 유력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민주당에서는 지난 9일 영입을 추진했던 MBC 신경민 전 앵커의 불출마 선언으로 장상 최고위원을 공천했다. 이외에 기타 야권에서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과 미래연합 정인봉 전 의원 등이 도전장을 내민 상황. 그런데 이중 미래연합의 후보로 낙점된 정인봉 전 의원의 활약 여부가 은평 을 선거구도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인봉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법률 특보를 맡기도 한 대표적인 친박계 인물로서 이재오 전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와 ‘악연’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앙금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던 정 전 의원은 96년 15대 총선을 노렸지만, 당의 지시에 따라 출마를 포기하고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게 된다. 이후 98년 이명박 의원이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지역구를 물려받아 재보선에 나갔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만다. 당시 정 전 의원은 기존의 이명박 대통령을 돕던 조직이 자신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서운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정치판에 뛰어든 것을 처음 후회한 게 15대 총선”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당시 상황에 대해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이재오 전 위원장과도 ‘악감정’을 갖고 있다. 지난 2006년 7월 보궐선거에서 서울 송파 갑 공천을 받았지만 이재오 전 위원장의 반대로 공천이 취소됐던 것. 당시 이 전 위원장은 정 전 의원의 ‘성접대 의혹’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공천 취소를 주장했었다. 정 전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 종로에서 당선됐으나 방송사 카메라 기자에게 성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전 위원장과 이러한 감정의 앙금을 갖고 있는 정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와는 좋은 인연을 맺어왔다. 2005년 당시 박 전 대표가 정 전 의원에게 당 인권위원장을 맡기면서 그는 공식적으로 ‘박근혜 사람’이 되었다. 지난 대선 때 박 전 대표 캠프에서 법률특보를 맡기도 했던 정 전 의원은 이른바 ‘이명박 X파일’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하기도 해 이 대통령과 감정의 골이 깊다.
미래연합이 정 전 의원을 은평 을 후보로 전략 공천한 이유도 친이계를 견제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미래연합 측 역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는 이재오 전 위원장과의 대결이 어려울 것임을 알면서도 정 전 의원의 ‘당선’보다 이 전 위원장의 ‘낙마’를 위해 뛰겠다는 각오다. 미래연합 측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의 중심에 있던 이 전 위원장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놔둘 수는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서라도 그의 낙마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인봉 전 의원 역시 은평 을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은평 을 표밭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지지세가 크지 않지만 친박 지지층과 한나라당 지지층 일부만 가져간다고 해도 이재오 전 위원장에게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이 전 위원장의 낙선운동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정인봉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어 이 전 위원장 측에서도 정 전 의원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은평 민심의 향배는 어느 편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을까.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만을 보면, 이재오 전 위원장에게 그리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은평구청장은 민주당 김우영 후보(득표율 54.16%)가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40.83%)를 눌렀고, 은평구의 서울시장 득표율에서도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1만 표 가까운 큰 차이로 이겼다. 이재오 전 위원장 역시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선 “어느 정도 (당선 가능성이) 희망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가 출마를 결심한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재오 전 위원장 측은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 당선 가능성을 점친 것일까. 그는 이번 선거를 지방선거 때의 ‘전국적’ 구도가 아닌 ‘지역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과 기초단체장 후보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각각 패배한 이유를 여권 대 야권의 구도 대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4대강 저지론’을 내세워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전도사’라는 대표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재오 전 위원장을 눌렀다. 이재오 전 위원장이 당의 지원도 마다하며 은평 지역에서 ‘나 홀로 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번 선거를 ‘한나라당 대 민주당’의 구도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에 이 전 위원장은 은평 뉴타운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의 표심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이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주로 30~40대인 이들은 ‘반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지만 동시에 ‘집값’ 같은 경제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정인봉 전 의원. |
정가 일각에서는 미래연합이 정인봉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또 다른 친이 대 친박 갈등을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연합 측은 “친이계 수장인 이재오 전 위원장이 출마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화합하려는 의도와 거리가 먼 것 아니냐. 이 전 위원장이 나서지 않아야 당 화합이 가능한데 그렇지 못하다. 그 때문에 우리가 나서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밖의 ‘친박조직’으로 친이계의 수장인 이재오 전 위원장과의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미래연합이 과연 은평 을 재보선에서 어느 정도의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 야권의 후보단일화 과정 등 적잖은 난항을 앞두고 있는 은평 을에서 미래연합의 ‘작은 반란’이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야당성향의 표가 갈린다면 큰 영향을 미칠 수 없겠지만 이번 선거가 지난 6·2 지방선거 때처럼 여야 대결 양상으로 발전해 박빙의 승부가 된다면 도토리당 미래연합의 후보가 이재오 전 위원장의 정치행보에 결정적인 고춧가루를 뿌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