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의 불효를 법원에 신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화제다. 아버지 A 씨(66)는 아들 B 씨(41)를 상대로 그동안 투자한 유학비와 결혼자금, 주택구입비용까지 모두 7억 원을 돌려주고 상속권을 포기해달라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A 씨는 자신이 사망 시 장남인 B 씨가 제사를 지내는 것조차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제사주재자 및 묘지안장 지위의 박탈까지 요구하고 있다. A 씨가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A 씨는 B 씨의 학창시절 강남 8학군으로 이사하고 과외를 시키며 교육에 힘쓰는 것은 물론 결혼자금도 모두 부담하는 등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B 씨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후 문전박대를 하며 불효를 해왔다고 A 씨는 주장하고 있다. 현재 아들 B 씨는 해외기업 간부급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패륜남’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기막힌 법정다툼 속으로 들어가봤다.
“어머니가 집에 찾아가도 아들이 문전박대를 하고, 2005년부터 지금껏 연락을 끊고 사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
2009년 10월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소장에 적힌 내용이다. 아버지 A 씨는 “아들 B 씨가 지난 5년 동안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살았음은 물론 집에 찾아간 어머니를 문전박대했다”며 “아들의 상속권과 제사 주재권 등의 모든 권리를 박탈해달라”고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양육비와 교육비 명목으로 들어간 돈과 결혼자금, 주택구입비용까지 모두 7억 원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A 씨와 B 씨를 불러 1차 조정에 들어갔지만 아버지 A 씨의 입장은 완강했다. 담당 판사의 말에 따르면 A 씨는 생전에 연락을 끊고 살던 아들이 상주 노릇을 하고 위선을 떨고 상속재산을 챙길 것을 생각하니 송장이 된 후에도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A 씨가 아들 B 씨를 이토록 증오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당판사에 따르면 조정실에 피고소인으로 동석한 아들 B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 앞에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개별 면담에서야 겨우 B 씨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지낸 속마음을 털어놨다.
B 씨는 집안의 7대 종손이었다. 유교적인 전통 하에 자라온 A 씨의 눈에 B 씨는 집안을 이끌어나가야 할 책임이 막중한 장남이었다. 이러한 A 씨의 생각은 B 씨가 성장하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온 가족이 강남 8학군으로 이사한 이유도 장남이 서울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A 씨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B 씨는 서울대 진학에 실패했고, 그 후 고액 과외를 받으며 삼수를 했지만 서울대 진학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A 씨는 집안의 장남을 서울대 이하의 대학에 진학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외 명문대로 아들의 목표를 새로이 잡았다. 결국 B 씨는 해외 유학을 떠났고, 외국 유명 명문대를 졸업한 후 한국에 돌아와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여기까지는 A 씨가 소장을 통해 “B 씨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번듯한 직장인이 되게끔 해준 데다 결혼할 무렵엔 고급주택을 얻어 주는 등 결혼자금을 모두 지불해 아들의 인생을 남부럽지 않게 만들어 줬다”고 주장한 것과 어느정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B 씨가 회사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면서 두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B 씨는 아버지의 기대치를 알고 있기에 회사를 퇴직한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연스레 아버지와 연락 횟수가 줄어들고 말수도 급격히 줄었다.
까닭을 알지 못했던 A 씨의 입장에선 집안 어른들의 경조사에 찾아와 안부를 물어가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장남이 결혼 후 집안일을 등한시한다고 느껴지자 불만이 쌓여갔다. 원래부터 말수가 적은 데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했던 B 씨는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설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담당판사에 따르면 조정 현장에서도 B 씨는 진술 시 아버지의 눈치를 보거나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한다.
B 씨는 이후 다시 굴지의 외국계 회사에 간부급으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또다시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실직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따른 자괴감과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B 씨는 더욱 소심한 행태를 보였고 그만큼 부자간의 앙금도 깊어졌다.
결국 아버지 A 씨는 아들을 법원에 불러 세운 뒤 소송이 진행되고서야 아들의 실직과 감춰진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소송은 진행 중이다.
이번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이은애 부장판사는 7월 9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너무 엄했던 아버지와 심약한 아들 사이의 대화 단절이 오해를 불러오고 결국 법정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본다”며 “아버지가 아들의 퇴직 사실을 들은 후부터는 화를 누그러뜨리는 모습이라 소송이 취소될 가능성도 보인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