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고객의 돈을 대신 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금 회수를 얼마나 용이하게 할 수 있느냐인데, 랩어카운트의 경우 이 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말한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경우 적게는 30개, 보통은 50~80개 종목에 투자한다. 투자 성적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를 추종하기 위해 시가총액 순위와 비중도 어느 정도 감안한다. 즉 1차 목표는 주가지수고, 최종목표는 주가지수 그 이상이다.
그런데 요즘 인기를 끄는 랩어카운트의 투자 종목은 8~15개가 대부분이다. 주식시장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투자의 최대 목표는 일정 기간 동안 얼마나 수익을 내느냐다. 펀드처럼 종목당 비중 한도도 없다. 따라서 한 종목이 총 운용자산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중이 아주 높은 종목의 주가에 따라 수익률 변동폭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랩어카운트는 마음에 드는 주식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이는 매수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말아올리기’다. 이 같은 방법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데, 바로 유동성이다. 랩어카운트가 ‘말아올린’ 7종목(LG화학 하이닉스 기아차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제일모직 삼성SDI 등), 일명 ‘7공주’의 예를 들어보자. 한 랩어카운트가 이들 종목에 대해 차익 실현에 나선다면, 주가하락 가능성이 커져 같은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랩어카운트의 매도도 촉발한다. 연쇄매도에 따른 주가폭락이 나타날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 이 같은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래에셋 펀드에서 나타났다. 미래에셋은 2005년 이후 급격히 유입된 주식형 펀드 작업으로 유망한 몇몇 종목을 집중 매수했고, 이에 따라 이 종목들의 주가가 폭등하고 펀드 수익률도 고공행진을 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들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수익률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아직까지 손실분을 회복하지 못했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랩어카운트의 투자 스타일을 보면 몇 년 전 미래에셋을 떠올리게 한다. 올라갈 때야 좋지만, 어떻게 내려올지 대책을 강구했는지 참 궁금하다”고 말했다.
당초 ‘1억 원 이상’이라는 가입제한 탓에 랩어카운트는 고액 자산가를 위한 상품이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가입제한도 3000만 원으로 낮아졌다. 이를 계기로 랩어카운트의 운용자산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커지는 점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돈이 들어오는 데도 주식을 사지 않으면 수익률에 문제가 생긴다. 또 들어오는 대로 일부 유망종목에 집중하면 주가 거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여러 종목에 분산하게 되면 일반 주식형 펀드와 비슷해져, 고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기 어렵다. 새로 들어온 고객의 돈으로 기존 고객의 수익금을 마련하는 ‘폭탄돌리기’도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랩어카운트의 인기가 폭발하다보니 투자문화 전체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고 있다. 일반 주식형 펀드 운용사들도 랩어카운트를 이기기 위해 수익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도 투자일임업을 할 수 있으므로 투자자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랩어카운트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앞서의 주식운용본부장은 “펀드매니저들에게 자산배분의 위험성을 늘 주지시켜왔다. 그런데 요즘 랩어카운트와 같이 자산배분을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시키려는 움직임들이 늘고 있다. 시장 예측이 옳다면 자산배분 전략이 효율적이지만, 늘 빗나갈 가능성이 있는 게 예측이라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시장에 잇따라 출시되고 있는 자산배분형 펀드는 일정 목표수익률이 달성되면 주식에서 기계적으로 얻은 수익을 안전자산으로 옮겨 차익을 보존하는 전략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목표수익률을 넘어서도 주가가 계속 오를 경우 이 펀드의 수익률은 시장에 한참 뒤처질 수 있다. 반대로 목표수익률 달성이 더뎌질 경우 자금이 계속 위험자산에 묶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 연말부터는 보험사와 은행도 랩어카운트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랩어카운트의 판매수수료는 3%대. 목표수익률은 반기 9~15%다. 운용수수료 0.6%를 제외한 순수 판매수수료는 2.4%로, 펀드의 1.5%보다 높다. 목표수익률도 시장전망대비 상당히 높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군침 흘릴 만하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펀드 열풍에서 은행의 힘은 이미 입증됐다. 국내 4대 은행 4000여 개 지점에서 하루에 1억 원씩만 랩어카운트를 판매해도 1주일이면 2조 원을 모을 수 있다. 한 달이면 무려 8조 원이다. 랩어카운트로의 ‘머니무브’(Money Move)가 이뤄진다면 주식시장은 빠르게 튀어오를 수 있다. 투기에 가까운 자금이 들고 날 때마다 시장은 급격히 출렁일 수 있다.
최근 두 번째 경기침체(더블딥·Double Dip)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꺼림칙하다. 5월과 6월 두 달 연속 외국인 헤지펀드 자금이 증시를 이탈했다. 14개월 만의 2개월 연속 순매도다. 헤지펀드의 대명사격인 ‘케이만제도’ 자금의 5월 순매도액은 1조 8465억 원. 2007년 8월(2조 51억 원) 이후 최대치다. 그동안 헤지펀드 자금 유출입은 전체 외국인 순매수·도 방향과 일치해왔는데, 6월에는 외국인 전체적으로 순매수를 기록했음에도 케이만제도는 3422억 원을 팔아치우며 뚜렷한 엇갈림을 보였다. 외국인 순매수는 코스피지수와 높은 동행성을 보였고, 헤지펀드 자금은 외국인 순매수에 상당부분 선행해왔다.
이 같은 외국인 헤지펀드의 변화 이유는 ‘이만하면 많이 먹었다’로 요약된다. 이들이 최근 가장 많이 순매수한 지난해 5월 코스피지수 1400 기준 현재지수는 20%가량 올랐고, 환차익도 10% 안팎이 발생했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경기가 둔화되다 보니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대표주들의 수익성장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외국인은 점차 신중해지는데, 국내 투자자는 점차 과감해지고 있다. 랩어카운트 외에도 지난해 주식을 잘 팔아서 수익을 냈던 국민연금이, 올해는 주식을 더 사서 수익을 내겠다고 한다. 가장 뜨거운 개인과 가장 차가워야 할 연기금이 모두 증시에서 돈을 벌어 보겠다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랩어카운트 투자가 자칫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지는 않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