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의 방미가 주목받는 것은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으로 한반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미국행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미국에서의 발언 수위에 따라서는 한반도의 긴장 파고가 적지않이 출렁일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5월3일 황씨가 ‘특별한’ 외출을 했다. 북한민주화협의회(북민협)의 내밀한 초청 모임에 참석한 것.
강남 외곽 C음식점에 마련된 이 자리에는 97년 황씨의 망명을 기획, 주도한 북민협 이연길 공동회장을 비롯해 박갑동(조선민주주의구국전선상임의장) 공동회장, 윤성수 탈북자동지회 부회장 등 17명이 참석했다.
▲ 황장엽씨(전 북한 노동당 비서) | ||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97년 한국에 올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믿지 않았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조차 막으려 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은 상존하지만 김정일의 성격상 발생하기 어렵다고 본다. 김정일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한이 패하고 자신의 운명도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군부인데 김정일이 군부통제에 실패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사전에 억제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전쟁 발발을 우려, 또는 억제하기 위해 대북지원을 하는 것은 한국의 약점만 노출시킬 뿐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은 실패한 정책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이것은 한국이 북한 정부의 속성과 김정일에 대해 무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에 금전과 식량을 갖다 준다고 해서 북한의 대남 전략이 바뀐다고 기대하는 것은 오판이다. 오히려 북한의 인민 통제와 인권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로 북한을 조정한다. 북한 또한 식량과 에너지로 인민을 통제한다. 북한에 건네준 금전(금강산관광사업 대가, 또는 정상회담 대가)은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북한에 제공한 식량은 바로 인민에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군부가 확보한 뒤 필요에 따라 인민에게 분배된다. 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인민만이 식량을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군부독재를 연장시켜줄 뿐이다.
한국으로의 망명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실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 대해 진실을 말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왜곡돼 전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 문제가 된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교수) 사례만 봐도 그렇다(황씨는 대남총책임자에게 들은 것이라며 송 교수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내가 왜 여기(한국)에 왔는가 반문할 때가 있다. 국정원의 과도한 신변보호와 간섭도 불편하다. 내 실존의 근거와 삶의 목적이 크게 손상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은 인격적인 면이나 리더십에서 부친인 김일성과 비교가 안된다. 어려서부터 귀하게만 자라 버릇이 없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잔인한 면도 있다. 한국에선 그의 ‘광폭정치’ ‘통큰정치’를 말하지만 성장기를 봐온 내 입장에선 ‘허풍정치’로만 보인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과 관련한 비극적인 일화가 있다. 김정일은 70년 영화배우로 성공한 뒤 이혼을 한 성혜림과 동거를 해 이듬해 김정남을 낳았다. 어느날 소녀들이 김정일이 거주하는 집을 구경하다 우연히 성혜림을 본 일이 있다.
당시 김정일은 성혜림을 알아본 소녀들을 모두 죽였다. 자신이 유명 영화배우와 동거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김정일은 미화되거나 과대평가됐다.
김종필씨(JP)가 북한에 간다고 했는데 설사 가더라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북한의 기본 노선은 누가 와도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수세력을 대변한다는 JP가 방북을 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북한에 당한 것’이다.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동안 미국에서 여러 차례 방미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신변보호를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미국을 방문해 북한의 실상을 밝힐 경우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 손상을 입을까 우려했기 때문으로 안다.
그러나 이번엔 미국에 간다. 이미 노무현 정부로부터 내락을 받았다. 시점은 노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온 이후인 6월이다. 북한 체제에 대해 진실을 알릴 것이다(황장엽씨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망명’ 가능성에 대해 ‘NO’라고 답했다.
단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해외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려 북한 민주화와 인권상황이 개선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장기체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장래는 암담하다. 인간의 삶이나 경제적 토대가 그러하다.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과오 중 하나는 북한(김정일)에게 나쁜 버릇을 가르친 점이다. 남북관계에서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북한이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모범을 보였다고 본다. 북한은 압박을 가해야 따라온다. 북한은 앞으로도 경제난에 시달리고 인민의 불만도 팽배할 것이다. 북한의 붕괴도 시간문제라고 본다.
나 하나 죽어도 그만이지만 후대가 걱정된다. 한국 대학생들은 좌파적이다. 북한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다. 북민협과 탈북자동지회 등 보수단체들이 정신차려 젊은이들과 함께 김정일 체제에 맞서야 한다. 앞으로 여생을 김정일의 독재와 심각한 인권 상황 등을 고발, 세계 여론을 형성해 북한이 민주화되도록 하는 데 쏟을 것이다.
박종진 기자 p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