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진경준)는 ‘A 기업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수백억 원대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있다’는 국세청의 고발장이 접수돼 A 사 박 아무개 대표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A 사는 2000년부터 2009년 초까지 홍콩 현지 법인을 허위로 청산했다고 신고해 역외 발생 소득을 미신고하는 수법으로 수백억 원대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조세 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이자나 배당소득금을 서류상 누락하는 방법을 이용, 1000억 원대의 소득을 역외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A 사가 이런 방식으로 약 1137억 원의 소득을 숨겨 총 437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A 사는 지난 2008년 3월 국세청 납세자의 날 성실세납자에게 주어지는 국세청장 표창을 받은 기업이다. 국세청은 개청을 기념해 매년 3월 3일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이나 기업에 포상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1984년 이후 성실 납세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국세청장, 세무서장 상으로 나눠지는데 성실납세자 표창을 받은 개인과 기업은 국가로부터 갖가지 혜택을 받는다.
납세자의 날 표창을 수상한 기업 혹은 개인은 △중소기업청 정책자금 지원 심사시 가산점 부여 △조달청 물품구매적격심사시 신인도 가산점 부여 △신용보증기금 심사시 보증한도 확대 △국방부 용역, 물품 구매적격심사시 가점 부여 △공항출입국 전용심사대 이용 △수상일로부터 1년간 국립공원(지리산국립공원 등 23개) 주차장 이용료 면제 우대 혜택 등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들 수상자에게 돌아오는 가장 큰 혜택은 3년 동안의 ‘세무조사 유예’다. 이는 납세자가 조사 대상자로 선정됐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조사를 하지 않는 제도다. ‘성실납세자 우대관리 규정’ 훈령에 따라 대통령·장관·국세청장 표창을 받은 기관 및 개인은 3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하고 있다.
이런 기준을 놓고 볼 때 A 기업의 경우 2008년 성실세납자 표창을 받은 이후 최소 1년 동안 세무조사로부터 자유롭게 탈세 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뒤늦게 적발하긴 했지만 국세청은 2000년부터 장기간 역외 탈루 행각을 벌여온 업체를 성실납세자로 표창장까지 줘 자유롭게 탈세행각을 벌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런데 탈세 혹은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거나 이미 받은 기업들 중 국세청에서 수여한 성실납세자 표창을 받은 곳이 일부 있어 관심이 쏠린다. 실례로 상장폐지 과정에서 불법 혐의가 드러나 최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G 사는 지난 2005년 국세청장 표창을 받은 업체. G 사의 경우 유예기간이었던 2007년경의 탈세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 의원은 “2005년 이후 성실납세자에 대한 정부 포상 수상자는 매년 45~50명 정도인데 2008년의 경우 (앞서 포상 수상기업 중) 유예기간 중 과세시효가 임박해 국세청 조사를 받고 적발된 사례가 19건에 이른다”며 “세무조사 유예기간 동안 세무조사를 실시해 적발된 것 자체가 성실납세자 중 탈세의 혐의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해가 갈수록 성실납세자 표창 기업의 세무조사 유예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2007년까지 최대 1년이던 유예기간 규정은 이후 2008년 2년, 2009년 3년으로 계속해서 늘었다.
특히 국세청장이 바뀌는 시기마다 유예기간 연장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용호 전 국세청장이 부임한 이후 국세청은 지난 5월부터 장기간 성실신고를 한 300억 원 미만 중소 사업자, 혹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사모범납세자’로 지정된 사업자에 대해 5년 동안 세무조사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유예 혜택을 주고 있다.
문제의 A 사의 경우 2000년부터 역외 탈루 행각을 벌여왔지만 2008년 이전까지 성실납세를 한 ‘공로’가 인정돼 국세청 표창을 받은 업체다. 결국 현 국세청의 방안대로라면 A 사 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측은 “단지 한두 가지 사례를 가지고 우대 규정을 축소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유예는 보장하지만 그 기간일지라도 탈루 사실이 발견 되면 세입을 징수할 수 있는 만큼 문제는 없다”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