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9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오 7·28재보궐선거 당선자가 박수를 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왕의 남자’의 복귀는 여권의 권력지형에 필연적인 변화의 후폭풍을 동반할 것이다. 오만한 권력에 대한 민심의 냉혹함을 몸소 체험했던 그로서는 당장 칼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미래는 정권재창출이라는 대명제와 직결된다. 그동안 사분오열된 친이계를 재정비해 권력을 재생산하지 않으면 친박계 또는 야당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현재 이 당선자(의원)는 ‘확전이냐 화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암묵적 연대를 한다면 이 정권 동안 조용히 묻어갈 수 있다. 하지만 친이 대표성을 두고 결사항전을 외친다면 향후 여권은 다시 한 번 권력쟁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재오 당선자의 정계복귀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이재오 당선자는 7·28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에도 철저하게 ‘낮게’ 임하고 있다. 승리에 도취돼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당사로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안상수 대표 등에게 먼저 인사말을 양보하며 최대한 예를 갖추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과 의원들의 인사 방문도 거절한 채 8월까지 지역구 인사에만 몰두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를 익히 알고 있던 지인들도 “이재오가 변한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청와대까지 밀어 올린 뒤 2008년 총선 때 공천장을 흔들며 위세를 떨치던 그때의 이재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 당선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직설적인 언행으로 정치판을 유난히 많이 흔들어온 트러블 메이커였다. 하지만 총선에서 낙마해 민심의 쓴맛을 본 뒤 22개월 동안의 미국 유랑, 그 뒤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어렵게 당선된 재보선 등을 거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정치권에서는 향후 이 당선자의 행보를 그 어느 때보다 관심 있게 주목하고 있다. 고난을 거치며 쌓은 그의 진정성이 당 복귀 후에도 계파 화합에 앞장서는 밑거름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악어의 눈물’을 뒤로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그가 또 한 번 흙탕물을 튀기며 권력쟁투를 벌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먼저 당장 갈등이 없을 것이라는, 강경파에서 화합파로의 ‘개과천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자. 이 의원은 당선 직후 친박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 때문에 갈등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한 측근은 “벌써부터 박근혜-이상득 등과 싸움 붙이려는 세력들이 나오지 않느냐.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로우 키’(낮은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측근도 “다시 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부턴 뭔가 달라진 이재오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지역구민의 뜻이고 서민정서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갈등을 야기하기보다 소통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이 당선자가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앞으론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정치 지형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 정권 초기 총선 공천 등의 과정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권력 구도를 친이 중심으로 세팅을 해 놓아야 할 필요성이 상당히 컸다. 이 당선자가 당내 입지가 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안정을 위해서 친이 중심으로 권력구도를 짤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를 맞는 작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레임덕을 막고 개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계파 간 화합이 절실하다. 청와대 개편 때 친박계와도 인연이 깊은 정진석 의원을 정무수석에 앉히고 정보를 총괄하는 치안비서관을 그 밑에 둔 것도 집권 후반기를 ‘정치’에 맞추겠다는 이 대통령의 뜻과 무관치 않다. 이런 계파 간 유화 모드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이 당선자가 예전처럼 친박을 압박하는 등의 강경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이 당선자가 8월 한 달 동안의 ‘조정기’를 거친 뒤 본격적으로 친이계의 대표성을 내세우며 권력쟁투를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이 당선자 개인의 정치적 비전을 위해선 이상득 의원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이 당선자는 ‘영일대군’과 함께 이명박 정권을 세운 권력의 두 축이다. 하지만 ‘하나의 권력은 절대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정치 논리대로 두 사람은 집권 뒤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 지난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정두언 정태근 의원이 벌였던 이상득 의원 퇴진운동에 이재오 당선자가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당선자는 당시 문제가 커지자 슬그머니 발을 빼 소장파들로부터 ‘판만 벌여 놓고 무책임하게 꽁무니를 뺀 비겁자’라는 비판도 들었다. 경위야 어쨌든 이상득 의원 측은 지금도 이재오 당선자가 퇴진운동의 주축이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당선자가 복귀한 뒤 이상득 의원과 ‘2차 대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당선자가 복귀함으로써 여권은 주도권을 두고 필연적인 내부 통일전쟁을 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열세였던 소장파는 이재오 당선자와의 일시적인 연대를 통해 이상득 무너뜨리기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본다. 이 당선자로서는 소장파를 복속한 뒤 그 여세로 이상득 의원을 칠 것이다. 그게 권력의 생리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여권의 내부 통일전쟁은 대권주자 옹립 주도권을 위한 전초전 성격이 짙다. 그동안 ‘이인규 사건’ 등으로 권력 갈등이 있었지만, 이상득 의원 인맥이 다시 여권 전반에 재배치되는 등 주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인적 구조로는 정권재창출과 당 개혁에 한계가 있다. 당내 개혁파에서는 현재의 ‘영일대군 중심’의 구조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대표 경선 때도 민심과 당심의 괴리가 큰 것이 확인이 됐다.
이재오 당선자가 노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당선자가 ‘킹메이커’가 되든지, 대권주자가 되든지 간에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더구나 이재오 당선자는 장외에 있으면서 클린정치를 줄곧 주장했다. 끊임없는 개혁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정가에서 거론되는 ‘형님 권력’을 넘지 않고서는 이재오 당선자의 정치적 비전은 피어날 길이 없는 셈이다. 특히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구태세력’이라고 인식된 이 의원을 꼭 넘어서야만 한다.
▲ 이상득 의원(왼쪽)과 박근혜 전 대표. |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당선자가 이상득 의원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앞서의 의원은 “지금까지 봤듯이 이 대통령은 권력 갈등이 있을 때마다 형님 손을 들어줬다. 어쩌면 정권이 끝날 때까지 두 형제는 같이 가야 할 운명이라는 걸 인식했는지 모른다. 이재오 당선자로서는 어떻게 이 대통령을 설득해 양측 관계를 갈라놓을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재오 당선자가 ‘형님’의 벽을 넘더라도 그 다음엔 더 큰 적인 박근혜 전 대표가 버티고 서 있다. 차기 대권을 두고 친이-친박 간 진검승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친박 내부에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친박 진영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오 당선자의 전투력이나 세 규합 능력에 거품이 많다. 그리고 친이 세력이 강력한 대권 주자를 못 세울 경우 결국 박 전 대표에게 백기 투항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재오 당선자 혼자서 박근혜 죽이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도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언제 항복하느냐의 문제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